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거의 매일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가사 속에 ‘크리스천’이 나오길래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그 노래를 우연히 듣고는 머리가 띵했다. 영어권 비속어인 F○○○가 반복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I’m still f○○○ing Christian.” 원래 가사는 이렇다. 아들은 자체 묵음 처리해 “I’m still Christian”이라고 불렀다. 아들에게 노래 뜻을 채근하듯 물었다. 제대로 알 리 없었다. 그러면서 “반 애들이 전부 부르는데…”라며 볼멘소리만 했다.
아들이 즐겨 부른 곡은 가수 지올팍(Zior Park)의 ‘크리스천’이다. 유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무색할 만큼 수개월 전부터 유튜브와 틱톡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웬만한 인기 유튜버들이 이 노래를 따라 했으니 말 다 했다. 쉬운 가사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 거기에 양손을 내밀어 흔드는 재밌는 춤사위가 어우러져 인터넷을 휩쓸다시피 했다.
지올팍은 지난 4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개그맨 유재석과 함께 크리스천을 불렀다. 방송 출연 빈도가 잦아질수록 나 같은 엄마의 고민도 늘어갔다. 맘카페에서도 관련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욕도 나오고 가사도 부적절하던데 애들이 부르게 둬도 되나요”란 질문이 수시로 올라오지만, 속 시원한 답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혹시 이 노래를 모를 독자를 위해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겠다. 가사는 모두 영어로 돼 있다. 노래 속 화자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신을 칭하면서도 명품을 사고 허세를 부린다. 당장 내일 교회에 가야 하지만 밤새 음란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완전한 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짖는다. 지올팍은 한 인터뷰에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는 취지로 작사 의도를 밝힌 바 있다.
우리 사회에 반기독교 정서가 팽배한 탓일까. ‘기독교인의 위선을 잘 꼬집었다’ ‘내가 이래서 교회 안 간다’ 등 안타까운 반응이 쏟아졌다. 대중의 관심에 비례하듯 교계의 분석도 다양했다. 유튜브 ‘엠마오 연구소’를 운영하는 차성진 목사는 이 곡의 주제를 기복주의 신앙의 비판으로 봤다. ‘교회에 돈을 많이 냈더니 좋은 크리스천이 됐다’는 식의 가사를 바탕으로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을 좇는 복음 공동체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유튜브 ‘Damascus TV’의 오성민 대표는 이 곡을 개인의 신앙 여정으로 해석했다. 기성세대의 보수적 기독교관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그 위선을 꼬집던 자신조차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는 자아비판이다. 오 대표는 “남을 정죄하기보단 서로 불쌍히 여기고, 나아가 하나님께 용서와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기독교 핵심을 잘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튜버 ‘책 읽는 사자’는 이 곡이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신앙관에 대한 비판으론 문제없지만, 결국 반기독교 정서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기에 사회적 영향력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기독교인 네티즌은 이 곡을 토론할 수 있는 주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반가워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회개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이 노래를 통해 내 신앙을 점검하게 됐다”는 부모의 자기반성도 볼 수 있었다.
경기도 김포 구원의감격교회의 조현수 목사는 최근 주일 설교에서 이 노래를 언급했다. 형편없는 F학점, 역겨운 크리스천이라는 자기 고발을 통해 우리가 책임감을 느끼고, 나아가 거룩함을 되찾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이었다. 그러면서 욕설인 F○○○ 대신 Holy(거룩한)로 바꿔 부르며 모두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길 기도했다.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내 아들에게 먼저 “I’m still holy Christian”이라는 개사를 알려줘야겠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