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나리오인데”… 데뷔 앞둔 감독 울린 유명 영화사

입력 2023-06-15 00:02
국민일보DB

국내 유명 영화제작사가 불공정 계약을 빌미로 신인 감독의 시나리오를 가로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여년 전 만든 시나리오로 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이 감독은 해당 계약서에 계약 기간과 보수 총액이 정해져 있지 않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작사는 “계약은 문제없다”며 되레 다른 이에게 연출을 맡겼다.

1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모씨는 2020년 영화제작사 S사와 영화 ‘어른동화’를 제작하기 위한 계약을 맺었다. 윤씨는 2011년 영화 어른동화의 시나리오를 만든 뒤 저작권 등록을 했다. 계약에 따라 윤씨는 시나리오를 제공하고 감독도 맡기로 했다. S사의 업무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투자 유치와 배우 캐스팅이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영화산업이 침체되면서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 윤씨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2억여원의 지원금을 받아왔지만, 제작은 미뤄졌다. 이후 1년여가 지나도 상황 변화가 없자 윤씨는 S사에 ‘영화화 기간’을 계약서에 포함해달라고 요구했다. 영화 제작 시점을 명확히 해달라는 취지였다. 보수 총액을 정하지 않고 협의 사항으로 남겨둔 점도 문제 삼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제공한 표준계약서는 영화화 기간을 5년으로 정하고 보수 총액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는 “기간은 비용 정산의 기준이 된다. 기간이 없으면 제작사가 영구히 시나리오 권리를 갖거나 일을 시킬 수 있다”며 “해당 계약은 불공정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영화산업노조 관계자 역시 “(기간 예측을 못 해) 발생할 수 있는 손해는 감독이 아닌 사업자인 제작사가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S사는 윤씨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씨는 영화산업계의 분쟁중재기구인 ‘영화인신문고’에 도움을 요청해 ‘양측은 영화화 기간 등을 명시한 새로운 계약을 맺도록 한다’라는 중재 결정을 얻어냈지만, S사는 수용하지 않았다. S사는 표준계약서는 권고일 뿐이고, 영화제작의 특성상 정확한 기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수를 특정하지 않은 건 수익을 많이 냈을 때 더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가운데 S사는 결국 다른 감독을 고용, 지난달부터 영화 어른동화 촬영에 돌입했다. S사 측은 윤씨가 감독을 맡지 않아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는 입장이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계약서에 따르면 S사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모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양측이 제작 일정, 최종 시나리오, 편집권 등에 관해 협의하도록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S사 결정을 따르게 돼 있다.

윤씨는 “이 시나리오는 10년 넘게 키운 내 자식과도 같다. 입봉작을 뺏긴 것도 모자라 제작 과정에서 완전히 제외됐다”며 “S사가 (내 요구를) 감독을 맡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했다면 계약을 해지하고 시나리오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