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에서 국민병으로’… 일본서 우울증이 급증한 과정과 이유

입력 2023-06-15 19:03 수정 2023-06-15 19:05

“한 개인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개념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낯선 것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현실이 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 경제 붕괴의 영향을 경험하고 그 결과 ‘세계 체계의 일부가 되는 것에 대한 취약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는 게이오대 인문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가 일본에서 우울증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그는 1990년대 미국에서 친구들에게 “일본 사람들은 왜 우울증에 걸릴 만큼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 답을 찾기 위해 25년간 우울증을 연구했다.

책은 우울증이 어떻게 ‘국민병’이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울증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임상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상호작용을 살펴본다. 그리고 과로 우울증을 중심으로 국가 정책과 관련된 제도 변화를 설명한다.

일본인들은 최근까지도 정신의학이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들은 노동을 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강조하고, 우울증 환자를 일본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 구조조정의 폭력에 예속된 주체로 묘사함으로써 우울증을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저자는 우울증이 단지 개인적인 질환이 아니라 제약회사, 행정 관료, 변호사, 노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에 의해 의미가 지속적으로 협상되는 사회적인 질환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정신장애는 삶의 괴로움의 표현이자 증명이고, 이러한 삶의 괴로움은 사회구조에서 생겨난다”고 밝혔다.

옮긴이들은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짚는다. 2021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우울감 확산 지수는 36.8%로 OECD 주요국 중 가장 높다.

기타나카 준코는 정신의학과 우울증의 역사에 관한 심층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카고대에서 문화인류학 석사학위를, 맥길대 인류학과 및 의료사회연구학과에서 일본 정신의학과 우울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한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는 영어로 출간돼 일본과 프랑스 등지에 번역됐으며 미국인류학회에서 프랜시스 수 도서상을 수상했다. ‘우울의 의료인류학’ ‘우울의 구조’ ‘20세기의 스트레스, 충격, 그리고 적응’(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