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이 땅을 살아가는 가치 ‘신수도회주의’ 되새겨야”

입력 2023-06-16 03:03
최근 내한한 최종원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가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한옥마을의 호모북커스에서 수도회 운동을 고찰한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혹독한 박해의 시간을 이겨내고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순간, 수도회 운동이 시작된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직후다. 그러고 보니 수도회의 역사는 로마 가톨릭보다 수백년 앞서 있다. 사막 교부와 교모들부터 베네딕토회와 탁발수도회는 물론 개신교의 떼제와 라브리 공동체,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제3 제국에 저항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고백교회와 핑겐발데 신학교까지 2000년 교회사에서 계속해서 등장한 것이 수도회 운동이다. 과도하게 세속화된 교회가 제국에 동화돼 갈 길을 잃어버릴 때 이를 비판하고 교회 갱신을 촉구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바로 수도회 운동이다.


‘수도회, 길을 묻다’(비아토르)를 저술한 최종원(52)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교수를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서촌 한옥마을의 호모북커스에서 만났다. 최 교수는 책을 통해 “제국의 가치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수도회 운동을 들여다 봤다”고 밝혔다. 세계가 하나의 자본과 문화로 엮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만큼이나 욕망으로 아우성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교회의 갈 길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돌아보는 책이다.


최 교수는 영국 버밍엄대에서 유럽 중세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다. 최 교수는 “유럽의 중세사는 곧 교회사이고, 교회사는 단순한 교리의 역사가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상호 작용을 기록한 역사”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다 성경 읽기 모임을 통해 복음을 접하고 역사학을 공부한 뒤에 다시 교회사를 전공한 그는 보다 객관적 학술적 시각에서 교회를 분석하고 있다. 인문주의 정신에 대한 존중이 한국교회 회복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최 교수가 2018년 저술한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는 그해 국민일보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2020년 내놓은 ‘공의회 역사를 걷다’(비아토르) 역시 국민일보 올해의 책 목회 신학 부문을 수상했다.


-2000년 교회사를 정리하고 계십니다. 사회와 상호작용하지 못하는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지금껏 제도 교회가 남아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교회 역사하면 이른바 제도 교회, 주류 중심 교회만 생각했습니다. 2000년 교회사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세 가지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제도 교회의 흐름과 둘째 수도회 같은 선교단체를 말하는 파라처치(Para-church)의 역사, 그리고 마지막은 이단들입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오늘만 있었던 게 아니고 초대교회 때부터 갖가지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초대교회와 공의회 역사를 다룬 책을 썼고, 두 번째 흐름으로 수도회의 역사를 들여다본 것입니다. 제도 교회가 위기에 처하거나 타락할 때 수도회 운동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합니다.”

-책에선 수도원보다 수도회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수도원 하면 금욕 은둔 침묵 이런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중세 기독교 역사만 봐도 수도원은 학문 노동 기도를 중심으로 한 전위적 공동체였습니다. 제도 교회는 늘 전통과 교리를 지켜야 하기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수도회는 이보다 급진성을 띱니다. 그래서 수도회에 운동이란 말이 어울립니다. 기성 교회가 여러 이유로 주춤할 때 이를 비춰보고 투영해보는 대조(對照) 공동체로서 수도회가 나타납니다. 수도원과 그 구성원인 수도사들은 사회와 격리돼 고립돼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현실 세계에 깊숙이 연결돼 교회의 여러 고민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려고 노력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전위적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긴 어렵습니다. 어떤 시대정신 속에서 활활 불타올랐다가 꺼지곤 하면서 교회를 자정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개신교의 신수도회주의를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21세기 초반 조너선과 레아 윌슨하트그로브 부부의 룻바하우스 이야기입니다. 복음주의개신교 가톨릭 재세례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에 모이는데 열두 가지 가치를 신수도회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첫째 제국의 버려진 곳으로 이동한다. 둘째 공동체 구성원 및 가난한 이들과 경제 자원을 공유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겸손히 복종한다. 넷째 공동체의 규칙을 공유하는 구성원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산다. 다섯째 낯선 사람을 환대한다. 여섯째 뜻을 같이하는 구성원들과 공동생활을 발전시킨다. 일곱째 마태복음 18장을 따라 지역사회의 폭력과 갈등 속에서 평화를 만든다. 여덟째 교회와 공동체 내의 인종적 분열을 애통해하고 정의로운 화해를 적극 추구한다. 아홉째 하나님이 주신 땅을 돌보고 지역 경제를 지원한다. 열번째 부부와 자녀들 및 독신자들을 지원한다. 열한번째 오랜 수련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의 삶과 공동체 규칙을 익힌다. 열두번째 관상 생활에 집중한다 등입니다. 제국의 버려진 자리로 간다는 정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 타자를 향한 배제 대신 환대, 폭력과 갈등 속에서 평화 추구, 지구 공동체의 환경에 대한 책임, 물질만능과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개개인의 성찰을 촉구하는 주제들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넘어 이 땅을 살아가는 의식 있는 시민들의 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넓은 의미의 수도회 운동이 있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을 고민하던 청년들에게 개신교 전통 안에서 답하던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라브리 공동체와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서도 쉐퍼 박사의 영향을 받아 죠이선교회 네비게이토 대학생성경읽기모임 등의 운동이 생겨납니다.

가깝게는 코로나로 제국이 멈춰섰던 경험을 합니다. 교회 역시 모이기를 힘쓰고 예배 선교 구제 교제 봉사를 열심히 했는데, 이게 코로나로 모일 수 없게 되니까 여러 금단 현상이 생기고 불안해하고 저항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개신교인이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보다 근원적 질문을 합니다. 우리의 실존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담은 표현이 무얼까 찾는 겁니다. 단순히 교회에 돌아오는 성도 숫자로만 파악해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더 바짝 엎드려서 공부하고 성찰하고 사람들이 신앙의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올 때 답을 줄 수 있는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수도회 운동을 다룬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계신 듯합니다.”

-캐나다 생활은 어떻습니까.

“집에서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캠퍼스까지 16㎞ 거리입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걸어서 출근합니다. 걸으며 묵상하고 기도하고 저술할 책의 목차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를 삼종기도라고 부릅니다. 걷기도 묻기도 듣기도 하는 기도입니다. 가끔 동전을 줍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유학 오는 목회자들과 사제 관계를 넘어 친구가 되곤 합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교회와 우리 자신이 사회와 어떤 상호작용을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는 공동체입니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