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올해 하반기에도 수출 부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다만 2차전지와 자동차, 조선·방산 업종의 실적 성장이 수출 회복을 견인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2023년 하반기 산업 전망 세미나’를 열고 주력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가 진단을 내놓았다. 세미나에 참석한 연구기관·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반도체 업종의 수출 감소율이 하반기에도 두 자릿수를 기록한다고 내다봤다. 철강과 석유화학 업종도 회복세가 더딜 것으로 예측했다. 대신 전기차용 배터리와 자동차, 조선·방산 업종이 호조세를 보이며 ‘1약(弱) 2중(中) 3강(强)’ 구도를 예상했다.
반도체 수출 감소율은 올해 상반기(-35.1%)에 이어 하반기도 마이너스(-) 12.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주요 반도체 수요 산업인 PC, 스마트폰 시장 부진으로 아직 상승 전환 동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이어진 글로벌 수요 감소세가 당장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다만 글로벌 데이터 센터들의 설비 교체와 인공지능(AI) 수요 확대로 상반기보다 양호한 여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차전지·자동차 업종에선 하반기에도 성장 기대감이 지배적이다. 송준호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한국 2차전지 산업은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 점유율이 53.4%에 이를 정도로 선방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전기차 산업의 급성장으로 대규모 양산 능력을 갖춘 완성차 업체들의 실적 성장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부상으로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며 “다만 중국 기업들의 가격 공세와 테슬라 등 스마트카 업체와의 기술 격차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조선 업종은 선박 건조 가격 상승과 노후 선박 교체 사이클에 들어서며 호황 흐름을 보인다는 예측이 나왔다. 방산 업종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국방비 증액 등으로 대규모 수출 계약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철강·석유화학은 선진국 수요 회복이 더디고,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미비한 점 등이 위기 요인으로 거론됐다.
수출 빙하기가 길어지며 올해 경제성장률은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지난 2020년(-0.7%)에 이어 가장 낮을 것으로 보인다. 홍성욱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하반기 수출 감소율이 상반기보다 둔화된다고 감안해도 경제성장률은 1.4%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상근 전경련 전무는 “수출 한파로 상위 기업들의 실적도 크게 악화된 상황”이라며 “불합리한 규제 혁파, 세제 개선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