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아이 낳지 말라는 한국

입력 2023-06-17 04:08

지난 3월 23일 강원도 원주시 한 대형마트의 CCTV에는 불편한 광경이 포착됐다. 한 40대 여성이 분유와 기저귀를 훔치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상식적으로 응당 처벌받아야 할 절도 행각이었지만 전후사정을 들으니 마음이 더 불편하다. 생후 2개월도 채 안 된 아이 먹일 돈이 없어서 14만원가량 되는 아이용품을 훔쳤다는 것이다. 미혼모인 데다 마땅한 벌이도 없었던 A씨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대로 아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인면수심 사례와 비교하면 되레 칭찬하고 싶을 정도다. 단편적인 사건이지만 이는 ‘저출산이 문제’라고 외치는 많은 지식인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과연 한국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 좋은 국가인가.

무직 상태에서도 받을 수 있는 대표적인 육아 제도를 살펴보면 이 의구심은 더 커진다. 16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일단 모든 아이는 출생 신고 시 ‘첫만남이용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부모는 한 번에 200만원을 수령받는다. 매월 받는 혜택도 있다. 올해 기준 0세 아이를 가진 부모는 월 70만원, 1세인 아이를 키울 때는 35만원씩을 받는다. 여기에 월 10만원씩 아동수당 제도가 더해진다. A씨의 경우 한부모가정이기 때문에 또 다른 지원책도 받는다. 중위소득 60% 이하인 저소득 한부모가정은 만 18세 미만 아이 1명당 월 20만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이를 합했을 때 A씨는 일시수령액을 제외하고 매월 100만원 정도를 수령하게 된다. 분유를 훔쳐야 할 처지니 A씨는 무주택자일 가능성이 높다. A씨는 이 100만원으로 월세를 내고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와 싸움을 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은 A씨에게 충분하다고 볼 수 있을까.

혹자는 별도 비용을 낼 필요 없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일자리를 구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 본 입장에서 생후 6개월도 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은 선뜻 권하기가 어렵다. 목조차 못 가누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말처럼 쉬울까 싶다. 설령 어린이집에 맡긴다고 해도 아이가 감기 등 유행병이라도 걸리면 일이 복잡해진다. 2~3일에 한 번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은 맞벌이 부부도 힘들어한다. 한부모가정은 더 힘들 거라 능히 짐작 가능하다. 게다가 이를 흔쾌히 허용하는 직장 문화는 아직 한국 사회에 정착되지 않은 상태다.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육아에 매진하는 부모에게 인색한 게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의료 인프라도 육아하는 이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소아청소년과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돼 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반경 30㎞ 내에 영유아 1만명당 30명의 소아청소년과 의료서비스가 가능한 곳은 서울시와 인천시, 경기도 남부, 대구시, 대전시 서부, 세종시 정도다. 광역시인 부산시나 광주시조차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아이가 아파도 주변에 갈 병원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있어도 긴 줄을 늘어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새벽부터 병원 개원 전에 줄을 서는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신조어에는 한국의 현실이 녹아 있다.

이 상황은 비극을 양산하기도 한다. 지난달 6일 서울 군자동에 사는 5세 아이가 새벽에 고열로 시달리다 끝내 숨졌다. 119구급차를 불렀지만 갈 수 있는 응급실이 없었다고 한다.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에서 그나마 의료 인프라 접근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 서울에서조차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개인적으로는 합계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기사를 쓰기조차 미안할 지경이다.

육아를 위해서라면 경제적인 부분, 직장 문화, 의료 인프라 등 아직 개선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한 일을 꼽으라면 의료 인프라일 듯하다. 최소한 소아청소년과나 응급 의료 인력만큼은 충분히 늘려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를 목숨 걸고 반대하는 의사들의 얘기를 듣고 머뭇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일을 정치가 가로막아서는 더욱 안 된다는 판단이다. 의료계 얘기를 듣고 눈치를 볼 거면 왜 국민의 세금으로 세비를 받으면서 그 위치에 있는 건지 물을 수밖에 없다. 아이가 사라지는 암울한 미래보다 개인이 지닌 금배지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길 바란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