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노조, 특히 민주노총은 시절이 야속할 것 같다. 부아가 치밀어 오를 터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촛불 청구서를 내밀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지난 정부 때 같을 순 없겠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아예 동네북 취급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부는 노조 회계 투명화와 고용 세습 문제로 압박하고 노조 전임자 근태 문제, 불법 집회 문제를 꺼내 또 한 번 나사를 조인다. 경찰은 건설현장 불법 폭력행위(건폭)를 수사하느라 분주하다. 1순위 국정과제인 노동개혁 고지를 향해 관행이란 이름의 구태부터 우선 정비하겠노라고 작심한 모습이다.
감정의 골은 메우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지는 중이다. 정부가 노정 전면전을 무릅쓰고 몰아치는 데는 여론전에서 월등히 우위에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을 대하는 여론이 그만큼 싸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노총이 당면한 위기의 핵심이다. 대중으로부터의 고립.
노조를 때릴 때마다 오르는 대통령 지지율이 이를 방증한다. 노동계는 정권과 보수 언론이 합작으로 악마화한 결과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전반에서, 특히 청년 세대에서 만연한 적대감과 냉대, 무관심은 외부적 요인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대중의 심기를 건드리고 등 돌리게 하는 비호감 유발 요소가 민주노총 내에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투쟁 일변도 노선에 문제가 있다. ‘노동자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고’ ‘강철 같은 해방 의지, 와서 모여 지키는’ 가두 투쟁의 시절에 지금도 갇혀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이제 “산업혁명만큼이나 파괴적인 AI 혁신이 노동시장에 대혼란을 가져올 것”(국제통화기금 부총재)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 됐는데도 1980년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그대로 연장되고 있는 것 아닌가. 친(親)노동 아니면 반(反)노동인 세계.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했던 친노동 성향의 문재인정부 역시 집권 후반기엔 결국 ‘배신’이란 힐난과 함께 퇴진 투쟁의 대상이 돼 버리지 않았나.
이에 더해 노동자 권익이나 복지와는 거리가 있는 정치·이념 투쟁이 민주노총과 대중 간의 괴리, 노조 지휘부와 현장 조합원 간의 괴리를 더욱 키운다. 많은 이들은 왜 노조가 한·미동맹 해체와 사드 철거를 부르짖는지, 왜 상부 지침에 따라 정권마다 퇴진 투쟁에 나서는지, 그 이후 현실적 대안은 있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정규직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 정책적 역량 부족, 노조 내부의 계파 투쟁 등도 민주노총의 오랜 문제점으로 꼽히는 지점이다. 이는 대기업, 공공 부문,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 특성에서 기인한 측면도 크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비주류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 지휘부가 이런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성찰도 반성도 없다. 전현직 간부들이 간첩 혐의로 대거 구속돼도, 지난달 ‘1박2일 노숙 투쟁’ 이후 술판과 노상 방뇨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도 사과하지 않는다. 정부 탓, 언론 탓, 무지한 대중 탓으로 돌릴 뿐이다. 투쟁은 노조의 무기이고, 투쟁 과정에서의 사소한 문제를 꼬투리 잡지 말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여론은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붉은 머리띠의 꼰대 집단’ 이미지를 쌓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노조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감당할 역할이 있다. 노조의 힘도 결국 여론의 지지로부터 나온다. 지금 필요한 건 ‘강철 같은 단결 투쟁’이 아니다. 시대 변화를 읽는 통찰력, 외부 목소리에 호응하는 공감력,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나가겠다는 용기다. 언제까지나 시대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자기만족적 투쟁을 할 순 없지 않겠나.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