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무신론자가 가르쳐준 기도

입력 2023-06-17 03:06
픽사베이

“사람은 정답이 될 수 없어요(People can’t be answers). 더 많은 질문을 만들 뿐이죠.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요. ‘아빠는 왜 이렇게 형편없지?’”

8부작 영국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에 등장하는 대사다. 이번에는 미국의 친자 확인 프로그램인 ‘머레이 쇼’. 한 살배기 소녀를 두고 내 딸이 확실하다며 신경전을 벌인다. 전 남편의 DNA 검사 결과 ‘당신은 아버지가 아닙니다’라는 판정이 나온다. 그러자 현재의 남친은 희열의 세리머니를 펼친다. 준비한 프러포즈 반지를 건넨다. 그런데 곧바로 두 번째 DNA 결과가 발표된다. ‘당신도 아버지가 아닙니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 솔로몬조차 놀라 소리쳤을 것이다. “오 마이 갓.”

최근 K-바이블(성경의 벽)이 제막되고 이곳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를 찾아온 두 분의 작가가 있었다. 한 분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한 분은 지독한(?) 무신론자였다. 무신론자가 내게 질문했다.

“이 세상에 없는 것 세 가지가 있어요. 무엇일까요?” ‘공짜’ ‘비밀’ 그리고 ‘정답.’

나는 겨우 한 개 정도를 맞췄다. 번개 같은 속도로 그 교훈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남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남다른 이익을 기다린다? 이거야말로 훔쳐 온 조화(造花)에 나비가 날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 헛물켜면 된통 당한다.

거기다 비밀이 없다. 두 사람만 은밀하게 아는 비밀이 탄로 났다. 그러자 하는 말, ‘사탄이 그랬다’고. 이래서 요즘 사탄들은 엄청 뿔이 났다고 한다. 사탄도 모르는 일을 뒤집어씌우니 말이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모른다.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배신의 쓴맛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은 아직도 ‘좋은 놈’ ‘나쁜 놈’만 알지 ‘이상한 놈’을 모른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말한다. “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고.

앞서 무신론자가 내게 두 번째 질문을 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과 우리 둘, 그래서 셋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나의 답은 빗나갔고 그가 대신 답해주었다.

‘기도.’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질문과 답이 나를 멍때렸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기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늘 불온한 환상에 빠져들곤 했다. ‘자전거를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자전거를 훔친 다음에 회개 기도하는 게 응답이 더 빠른 것은 아닐지….’

이런 기도 왕초보 목사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기도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아이들의 잠자리를 돌보려고 어린 딸아이의 방 앞에 왔을 때, 딸아이의 자그마한 기도 소리가 들렸다. 딸애는 잠자기 전 침대 맡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아이는 하나님께 자신이 소원하는 여러 가지 기도제목들을 죽 열거해 나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로 눈을 향한 채 말했다. ‘그리고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나요?’”(로버트 영 박사의 수기에서)

나는 어린아이의 기도에 나의 작은 기도를 얹어 읊조렸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골라서요.”

나는 요즘 한 무신론자가 가르쳐 준 인생의 ‘정답’을 어린아이를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청란교회 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동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