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 실태 드러나… 야당이
옥죄기라며 반발해 보수·진보
세력 간에 날 선 싸움 불가피
진영 논리에 빠진 시민단체의
정치화는 시민 불신 초래해
보수·진보 가리며 편향적으로
지원한 역대 정부들 책임 커
권력 용병 역할 충실히 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어
정부가 정치화 족쇄 풀어주고
시민단체는 본연 책무 다해야
사용 실태 드러나… 야당이
옥죄기라며 반발해 보수·진보
세력 간에 날 선 싸움 불가피
진영 논리에 빠진 시민단체의
정치화는 시민 불신 초래해
보수·진보 가리며 편향적으로
지원한 역대 정부들 책임 커
권력 용병 역할 충실히 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어
정부가 정치화 족쇄 풀어주고
시민단체는 본연 책무 다해야
대통령실은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시민단체가 각종 부정과 비리의 온상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 민간단체에 지급된 6조8000억원 가운데 최소 300억원 이상의 부정 사용이 있었고, 이에 내년도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예산을 5000억원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도 시민단체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야당과 진보단체는 윤석열정부가 노조 탄압에 이어 시민단체 옥죄기에 나섰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민단체를 둘러싼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날 선 싸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토크빌은 프랑스보다 미국 민주주의가 더 나은 이유를 지방자치, 자발적 결사체, 배심원제도에서 찾았다.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자발적 결사체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고 봤다. 자발적 결사체가 활동하는 시민사회는 국가, 시장과 함께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주체다. 세 영역 간의 견제와 균형이 잘 이뤄질 때 비로소 민주적 통치가 가능하다. 시민사회의 부침은 곧 민주주의의 발전과 후퇴로 연결된다.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 아래 사라졌던 시민사회가 부활하면서 1987년 한국의 민주화가 가능했다. 명줄이 끊기다시피 한 시민사회를 살려 놓은 것은 시민단체였다. 당시 각 사회운동 세력, 종교계, 학생운동 조직을 망라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직선제 개헌 투쟁의 선두에 섰고 일반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를 이끌었다.
민주화 운동의 일등 공신이었던 시민단체가 유감스럽게도 민주화 공고화에는 걸림돌이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시민단체는 정치 권력을 견제하면서 정치 부패 추방, 금융제도 개혁, 환경 보호, 인권 보호 등과 같은 정치사회 개혁에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진영 정치의 늪에 빠져 국가와 시장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는 사라지고 진보단체와 보수단체만 남았다. 시민단체의 정치화는 시민들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의 사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시민단체는 2003년과 2004년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5년이 되자 신뢰도가 5위로 떨어졌고, 2006년에는 6위로 밀려났다.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은 최근까지 이어진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패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시민단체의 청렴도 점수는 2012년 5.16점에서 2022년 3.9점으로 크게 떨어졌다. 이는 정당과 입법부(2.4점)보다는 높으나 행정기관(3.97)과 민간기업(4.35)보다 낮은 점수다.
시민단체의 정치화 현상을 주도한 건 정부였다. 보수 정부는 보수단체를, 진보 정부는 진보단체를 선별적으로 지원했다. 김대중정부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통해 시민사회를 포섭해 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노무현정부는 정권 인수위원회의 국민참여센터, 청와대 비서실의 시민사회수석실, 외교통상부의 NGO 대사 등을 이용해 진보적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일종의 가족주의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명박정부에선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 관변 3단체가 정부 보조금 중 80%를 지원받았다. 박근혜정부 역시 우파 성향 시민단체를 편향적으로 지원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박근혜정부 때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던 우파 성향 단체에 대한 지원은 끊기고, 친여·좌파 성향 단체들이 대거 새 지원 대상이 됐다. 윤석열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형태도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부 보조금을 받았던 많은 시민단체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대신 전 정부 5년 동안 단 한 번도 지원금을 받지 못한 시민단체 38곳이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정치화 그리고 이로 인한 부패와 비리에 대한 책임은 상당 부분 정치 권력과 정부에 있다. 시민단체가 지금처럼 진영 정치의 늪에 빠져 정치 권력의 용병 역할에 충실히 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시민단체는 정부 업무의 대행자가 아닌 감시자로서 본연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견제하고 다퉈야 할 대상은 상대 진영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다. 민주적 통치는 국가, 시민사회, 시장 영역 간의 견제와 균형의 틀 안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시민단체 비리를 단죄하기에 앞서 정치화의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