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牛耳島)는 섬 서쪽에 튀어나온 2개의 반도가 소의 귀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다. 하나가 돈목마을이고 다른 하나가 성촌마을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흑산도와 함께 모두 흑산도로 불렸다. 홍어와 얽힌 사연도 전해진다.
목포시에서 65㎞ 떨어져 있는 우이도는 면적 10.7㎢에 주민 217명(2022년 기준)인 작은 섬이다. 섬 가운데 높은 고개를 중심으로 서쪽 돈목리와 동쪽 진리로 나뉜다. 섬 규모는 작지만 풍경의 크기마저 작은 건 아니다.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이국적인 풍경이 기다린다.
우이도의 최고 자랑거리는 풍성사구(風成砂丘)다. 돈목해변 북쪽 성촌마을 인근에 자연이 빚어놓은 높이 50m, 경사면 길이 100m 규모의 모래언덕이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북서풍, 동남풍 등 계절에 따라 부는 바람이 교차하면서 만들어졌다.
모래언덕의 경사도는 32~33도. 1970~80년대 이곳에서 비료 포대를 깔고 모래 썰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이 때문에 사구는 초라할 정도로 훼손됐다. 2025년 말까지 보존을 위해 출입이 금지됐다. 사구 비탈면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숲길 탐방로를 따라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언덕에 오르면 세찬 바람이 맞이한다. 그 바람에 모래가 발자국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고, 스르르 흐르며 부드러운 곡선의 물결무늬를 만든다. 우이도에 전해오는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 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언덕 위는 거대한 사막의 한 조각을 떼어 놓은 모습이다. 급경사를 이루는 모래언덕 너머로 활처럼 휘어진 돈목해변과 붉은 지붕을 얹은 돈목마을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마음이 풍성해진다.
돈목해변은 모래사장 길이 1.5㎞, 너비 300m로 우이도에서 가장 큰 해변이다. 모래가 곱고 단단하며 경사가 완만하다. 만의 안쪽에 위치한 덕분에 파도가 잔잔해 해수욕에 안성맞춤이다. 돈목은 멧돼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옛날 주민들은 섬에 많던 멧돼지를 이 해변으로 몰아 사냥했다고 한다.
우이도에서 유명한 인물은 손암 정약전이 쓴 ‘표해시말(漂海始末)’의 주인공인 조선시대 홍어 장수 문순득(1777~1847년)이다. 1801년(순조 1년) 12월 24세의 문순득은 작은아버지 등 마을 사람들과 함께 흑산도 인근 태사도에 홍어를 사러 갔다가 이듬해 1월 돌아오는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해 일본 오키나와까지 떠밀려 갔다. 같은 해 10월 중국을 향해 출발했지만 다시 표류해 더 남쪽인 필리핀에 도착했다. 이후 광저우, 마카오, 베이징, 의주, 서울을 거쳐 1805년 1월 3년 2개월 만에 우이도로 돌아왔다.
당시 이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이 그의 표류기를 쓴 것이 ‘표해시말’이다. 문순득의 기억을 따라 날짜별로 정리하고, 표류지의 풍속·언어·가옥·선박 등에 관해 자세하게 남겼다.
진리마을 선창 주변에는 왼손에 노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인사하는 문순득 동상이 서 있고 그 뒤로 생가도 복원됐다. 진리마을 선창은 조선시대 상업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포구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당시 일대 상인들은 흑산도에서 홍어를 사다가 내륙인 나주 영산포에 팔고, 나주에서는 쌀 등 생필품을 사서 섬 주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우이도(신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