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에 사는 70대 A씨는 최근 잔뇨감으로 근처 가정의학과에서 소변약을 처방받았다. 얼마 후 A씨는 어지럼증을 느껴 다른 내과를 방문했고 어지럼증약도 추가로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지럼증약 성분으로 구토 증세까지 생겼고 할 수 없이 위장약도 처방받았다. 이렇게 동네병원 여섯 군데를 돌며 처방받은 약이 10여가지나 됐다. 그래도 몸 상태는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집에서 5시간 거리인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를 방문하고 나서야 복용하던 약을 줄일 수 있었다. A씨는 “동네에 노인진료전문병원이 없어 먼 거리여도 올 수밖에 없었다”며 “약을 한꺼번에 먹으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는지 몰랐는데 다행히 노년내과 진료를 통해 복용하는 약을 절반가량 줄였다”고 말했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노인들을 위한 병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인진료전문병원은 전국에 15개뿐이며, 그중 노년내과가 설치된 병원은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김광준 연세세브란스 노년내과 교수는 13일 “15개 노인의료전문병원 중에서 종합병원인 연세세브란스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3곳을 제외하고는 노년내과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인은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라 같은 약을 처방받더라도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 노년내과는 환자의 전체 특성을 파악해 ‘약 충돌’로 생기는 부작용을 줄여주고, 노쇠 판단 및 약 정리, 요양병원 입소 등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70대 B씨도 최근 노년내과를 방문한 뒤에야 불필요한 약 복용을 줄일 수 있었다. 그는 신경외과 수술 뒤 진통제 소염제 복용 부작용을 겪었다.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소화제 등을 추가하면서 B씨가 처방받은 약만 총 17가지가 됐다. 그는 “구역질과 어지럼증이 지속돼 노년내과를 찾은 뒤에야 약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인 특성을 파악하지 않은 채 진단을 내리면 약 처방만 증가시키게 된다”며 “같은 나이의 노인이라 해도 노쇠 정도에 따라 진단해야 수술 시 사망률, 욕창 발생률 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고령화와 만성질환자로 인해 하루에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75세 이상 환자 비율이 70.2%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은 수치로, OECD 평균(46.7%)을 훌쩍 뛰어넘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다제약물 복용자의 경우 부적절하게 약을 복용할 경우 입원율이 1.32배, 사망률이 1.35배 증가한다.
노년내과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라 의료계 내부의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교수는 “가정의학과나 신경외과 등에서 내과에서만 노인을 진료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어 내과 내에 분과 전문의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며 “의료계 전체 시스템 내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