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와 한 여자
한 여자는 교회 언니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첫 만남에서 내리 3시간 동안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회사원이었던 남자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설립한 기독교 청년봉사단체를 10년째 이끌고 있었다. 그의 꿈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여자는 곁에 머물기만 해도 선한 영향을 받을 것 같은 이 남자와 부부의 연을 맺기로 결단했다.
신앙이 뿌리내린 이 가정에선 만 9년 동안 딸 4명의 결실이 맺혀졌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그 과실이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20년 전 남자를 천국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기적 같다. 그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장주연(54·서울광염교회) 권사와 스포츠 브랜드 푸마의 성공 신화를 쓴 고(故) 고창용 집사 이야기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른아홉, 젊은 가장에게 찾아온 선고
장 권사에게 2002년은 충격의 소용돌이 같은 시간이었다. 넷째 아이 임신 소식을 듣고 축복을 나눌 겨를도 없이 한 달 만에 남편의 시한부 판정을 맞닥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병명은 뇌종양. 의사는 남은 시간이 11개월 정도라고 했다.
서른아홉의 젊은 가장에게는 절망적인 선고였다. 하지만 아내이자 엄마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임신한 몸으로 세 딸을 챙기며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나섰다. 장 권사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을 때 기도의 동아줄을 붙들며 간구하는 동안 새 가족들이 둥지를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새 가족이란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 성도들과 고 집사가 재직하던 이랜드(회장 박성수) 직원들이었다. 교회에선 고 집사 쾌유를 함께 기도하는 365일 철야기도팀이 꾸려졌고 홈페이지에 마련된 게시판엔 고 집사의 투병 소식과 기도제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회사 직원들은 보험을 든 게 없어 의료비 걱정이 크다는 얘길 듣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았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을 땐 순번을 짜 집과 병원을 오가는 차량 운전대를 잡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한 가정의 일원이 된 듯 움직이게 한 건 고 집사가 보여 준 평소 삶의 태도였다. 그의 삶은 긍휼과 사랑, 헌신으로 축약된다. 대학 시절 봉사단체를 이끌 땐 보육원 아이들에게 오빠와 형이 돼줬고 홀몸 노인들의 팔순 잔치를 기획하는가 하면 연고 없는 어르신들의 장례식에서 직접 염(殮)을 하기도 했다.
고 집사는 교회와 회사에선 ‘셔터맨’으로 불렸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 궂은일을 도맡았고 모든 일에 마지막까지 임한 뒤 셔터를 내리는 사람이었다. 푸마 브랜드의 본부장을 맡기 전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을 땐 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며 인격적인 태도로 귀감을 샀다. 그가 생전 남긴 노트의 첫 줄엔 ‘사람과 문제를 구분해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천국 가는 길에 남겨 준 DNA
2003년 2월.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던 가장은 수의 대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었던 브랜드의 옷과 신발을 신은 채 천국으로 향했다. 가장의 부재가 낳은 그림자가 옅을 리 없었다. 하지만 투병 기간 사랑의 울타리가 돼줬던 이들은 고 집사의 빈자리를 채우며 곁에 섰다. 이랜드에선 고 집사를 명예사원으로 위촉하고 20년 넘게 경제적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교회 내 여성 사별자 모임인 샬롬회는 장 권사의 영적 언덕이 돼줬다.
이날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장 권사 가정엔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의 삶을 나누는 대화가 쌓이는 동안 고 집사가 생전 보여줬던 사랑과 섬김의 DNA가 네 딸의 이름에 오롯이 투영돼 그려졌다. 은혜를 입은 왕비(에스더)가 되길 바랐던 은비(28)씨는 유년 시절 받았던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가슴에 새기며 영국에서 평화학을 공부한 뒤 아동인권 전문가로서의 꿈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이준건(32·서울광염교회) 전도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신앙 교육과 아동 인권을 함께 공부하며 동역하고 싶다”고 밝혔다.
둘째 은송(26)씨는 학창 시절부터 이어온 발레, 뮤지컬 경력을 바탕으로 안무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데 달란트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워십의 예술성을 녹인 세계 최고의 안무가가 되고 싶다”며 “앞으로 다양한 크리스천 예술가와 함께 크리스천 종합예술 아카데미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은혜의 강물에 젖어 살기를 바랐던 은수(23)씨는 학창 시절 젖어 있던 깊은 슬픔을 털어내고 드레스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하나에 몰입하면 밤새도록 집중력을 놓지 않는 열정이 아버지께 물려받은 최고의 DNA”라며 웃었다.
막내 은지(21)씨는 하나님 은혜를 잘 아는 공학도로 살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개발시키는 일이 최대 관심사인 그는 “지난겨울 케냐에 다녀온 뒤 그곳 학생들이 현지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온라인 회의를 열고 도와왔다”며 “올여름에는 우간다 쿠미대학에 수업 조교로 방문해 학생들과 교수님들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 권사는 남편의 뇌종양 판정을 접한 뒤 천국으로의 이별을 고하기까지 333일간의 투병일기를 엮기도 했다. 책의 제목은 ‘상실은 있어도 상처는 없다’(생명의말씀사)이다. 그는 “20년 시간을 지나오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었기에 상처와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었다”며 웃었다.
가평=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