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띠 맘끼리 육아 정보도, 장난감도 나눠요”

입력 2023-06-14 04:06
여러 부모와 어린 자녀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육아나눔터’에서 ‘아빠랑 나랑, 김장데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서초구 제공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데 지역 기반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마을 공동체에서 돌봄은 물론 아이들 사이 관계 맺기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웃 간 교류가 줄면서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보건복지부 전국보육실태조사(2021년)에 따르면 부모들은 양육 지원 체계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1세 미만과 1~2세 미만의 부모들에게서 ‘가정양육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각각 97.8%, 71.4%로 조사됐다.

하지만 ‘부모 이외에 자녀를 직접 돌봐주는 사람은 없고(41.2%)’ 영유아 자녀 양육 시 육아 관련 지식과 조언은 ‘온라인 사이트(32.8%)’에서 가장 많이 얻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다 보니 ‘양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52.1%)’는 응답은 절반을 넘었다.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부모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또래 가족을 찾거나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다. 부모는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고립 육아’에서 벗어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회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꼽힌다. 또 긴급한 상황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품앗이’도 가능하다.

친정 가까이에 살다 2시간 떨어진 곳으로 최근 이사한 박모(38)씨는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가족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박씨는 13일 “이사 전엔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이제 ‘자력갱생’해야 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방법은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가 가장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서모(33)씨도 지역 온라인 카페에서 ‘2022년생 호랑이띠 육아 모임’을 조직해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서씨는 “산후조리원 동기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부모님은 부산에 있어 ‘나 홀로 육아’에 지쳐있었다”며 “모임 이후부터는 집에 초대해 함께 육아하고 이유식, 반찬 등을 나누고 있다. 남편들도 함께 어울리며 육아를 분담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에서 3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유모(35)씨는 얼마 전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에 있는 ‘공동육아나눔터’를 이용하고 있다. 유씨는 “자연스럽게 이웃들을 알게 됐고 아이에게 동네 친구들이 생겼다”며 “사설 키즈카페를 이용하면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여기 가면 장난감이 다양하고 가기 편해서 좋다”고 했다. 특히 급한 일이 있을 때 아이를 서로 돌봐줄 수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정부도 공동육아 공간 및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만 6세 이하 영유아와 부모가 이용할 수 있는 ‘공동육아방’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60㎡에서 120㎡ 규모의 놀이 공간과 성장단계에 맞는 다양한 놀이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다. 공동육아방은 2019년에는 46개소에 불과했지만, 올해 6월 기준 24개 구에 87개소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누적 40만명이 이용했다. 2세 아이와 함께 송파구의 공동육아방을 찾은 한 이용자는 “영유아에게 맞는 장난감과 또래 아이들이 있어 일반 키즈카페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부산·대구광역시도 ‘공동육아나눔터’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은 8개 구, 10개 센터에서 18개소를, 대구는 8개 구·군에 16개소를 마련했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여성가족부는 2010년 시범 사업으로 시작해 전국에 376개소를 운영 중이다. 누적 이용자 수는 2021년 146만명에서 2022년 212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덕분에 지역 내 품앗이 활동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보통 아이와 연령대가 비슷한 소수 가정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직장인 조모(43)씨는 수년간 아들(현재 12세)이 다니던 한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양육품앗이’를 했다. 조씨는 “아이들은 물론 엄마 아빠들도 서로 잘 맞아서 2년간의 활동 후에도 자주 만나며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난 세 가정의 자녀들은 현재 인근 초등학교에 함께 다니고 있다. 며칠 전엔 품앗이에서 만난 다른 가정 아이가 엄마 심부름으로 체리를 ‘배달’하러 오기도 했다. 조씨의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키울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은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된 것 같다”면서 “지자체가 ‘양육품앗이’처럼 함께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모임을 계속 주선하면 좋겠다”고 했다.

공동육아가 더 활성화되려면 보육 정책과의 연계 및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조미라 육아정책연구소 보육정책연구팀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올해부터 만 0세 아동 등이 있는 가정에 월 70만원씩 부모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데 이를 공동육아 연계 조건으로 지급한다면 양육 소외 가구를 줄이고 공동체 모임이 늘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1~2명에 불과한 공동육아나눔터 전담 인력을 늘리면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참여 가구 수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조정한 기자 j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