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프랑스인 미셀 파카드와 자크 발마가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9m)에 올랐다. 식량이나 종교 의식을 위해 가파른 절벽을 탔던 이전 사람들과 달랐다. 사람이 감히 갈 수 없는 곳을 탐험하자는 제안을 직접 실현한 것이었다. 이들은 1박2일의 사투 끝에 몽블랑은 악마가 살지 않는 눈 덮인 산봉우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는 근대 알피니즘의 시작이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알프스 등반 경쟁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개인적 명예였지만 곧 각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국가적으로 ‘정상 사냥(peak hunting)’을 지원했다. 국제산악연맹(UIAA)이 공인한 4000m 이상 알프스 봉우리 82개가 20세기가 시작하기 전 모두 정복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먼저 오르는 초등(初登)보다는 남이 가지 못하는 어려운 코스로 가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됐다. 정복하러 산을 오른다는 오만함을 버리고 인간 앞에 드리워진 벽을 넘어선다는 알피니즘 본래의 의미를 찾아 나섰다.
그중 프리솔로 클라이밍은 가장 극단적인 자신과의 싸움이다. 수백m가 넘는 거대한 암벽을 아무 장비 없이 혼자 맨손으로 오른다. 목숨을 좌우하는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바위 틈에 끼워 로프를 거는 피톤(piton) 사용조차 비윤리적이라고 여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프리솔로 등반가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2019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프리솔로’는 미국 등반가 알렉스 호놀드가 요세미티국립공원의 914m 수직 암벽을 오르는 여정을 다뤘다. 이런 미친 짓을 왜 하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한 작품이었다. 그제 롯데월드타워를 73층까지 맨손으로 오른 영국인이 체포됐다. 이 영국인은 극한에 도전하는 프리솔로 등반가였을까, 아니면 도심의 고층 빌딩을 오르며 세상의 이목을 끌려는 그냥 ‘관종’이었을까.
고승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