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CEO’도 법정구속… 산업재해 엄벌에 기업들 바짝 긴장

입력 2023-06-14 04:06
국민일보DB
산업현장의 노동자 사망사고를 강하게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 1년6개월째 접어들었다. 법원의 양형이 엄벌 기조로 흐르면서 산업계에 긴장감이 높다. 중대재해법 제정 취지에 맞춰 법원의 처벌 수위도 전반적으로 세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한국제강 대표 A씨에게 첫 실형이 선고됐고, 지난 7일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준욱 전 인천항만공사 사장이 징역 1년6개월 선고에 이어 법정구속됐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존 산안법은 사망사고에도 과실치사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법원이 더 무겁게 묻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13일 말했다.

최 전 사장은 지난 2020년 인천항 갑문 보수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로 재판에 넘겨졌다. 발주 원청인 인천항만공사 사장으로서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혐의(산안법 위반)를 받았다. 원청 대표이사였던 최 전 사장을 당시 안전보건 최종 책임자로 볼 수 있느냐가 법적 쟁점이었다.


사건을 심리한 법원은 발주공사의 안전조치 책임이 원청에 있다고 보고, 최 전 사장을 최종 안전책임자로 판단했다. 또 인천항 갑문에서 이미 2016년과 2017년에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이번 사고의 유족과 합의를 하지 않은 점도 양형에 반영됐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최 전 사장은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낸 상태다.

중대재해법 판례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산업계는 법원의 강화된 기조에 당혹스러워한다.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가 낮았던 산안법 사건에도 법정구속 사례가 나오면서 중대재해법 처벌도 한층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이 이어지면서 기존까지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봤던 사안도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는 “원청 지위에 있는 기업들은 협력업체 근로자의 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대재해법을 따지는 법적 기준은 ‘위험성 평가’와 ‘사망사고 전력’에 집중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에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중대재해법 사건(34건) 가운데 사업장 내 시설·장비 등에 대한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은 사례가 28건(82.4%)으로 가장 많았다.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올해 4월 한국제강 대표 A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면서 “종전 발생한 노동자 사망사고로 재판을 받던 중 또 사고가 벌어졌다. 근로자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판시했다.

김성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전에 벌어졌던 산업재해나 안전 조치 여부 등도 양형의 주요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