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좋은 사교육’이란?… 교육부와 학부모들의 동상이몽

입력 2023-06-14 04:07
게티이미지뱅크

교육부가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정보를 모아 사교육 업체와 공유하겠다고 합니다. 초·중·고교 학생 수백만명의 학습 데이터를 사교육 업체로 넘긴다는 말입니다. 학부모 등골을 휘게 하는 사교육을 막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도움을 주는 ‘역주행’으로 비칩니다. 가짜 뉴스가 아닙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일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며 힘줘 말한 내용입니다.

정치권이나 교육부 관료들이 내놓은 정책을 이 부총리가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이 부총리가 교육부 직원들을 독려하며 밀고 가는 정책이죠. 이 부총리는 사교육 옹호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였던 인물입니다. 10여년 전 그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던 시절 교육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사교육 업체 M사 주식이 오른 날은 장관 심기가 불편하니 웬만하면 대면 보고를 삼가라.” 그가 사교육과 한창 전쟁을 벌일 때는 사교육비 상승세가 주춤하기도 했습니다.

당혹스러운 변화입니다. 이 부총리 뜻대로 된다면 사교육 업체들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있는 빅데이터를 손에 넣게 됩니다. 교육부가 사교육으로 넘길 수 있다고 예시한 정보 목록은 이렇습니다. 학업 성취수준은 기본입니다. 학습 패턴과 문제 풀이 패턴도 들어있었습니다. 어떤 단원의 학습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문제를 풀 때 어떤 규칙성이 있는지, 각 문항별 난이도별 소요 시간 등이 넘어갑니다. 공부할 때 학생들이 얼마나 집중하는지 눈동자 위치도 측정하는 기술도 준비돼 있다니, 개별 학생이 특정되는 개인 정보를 빼고는 교실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제공하겠다는 말입니다. AI 교과서 개발 및 고도화를 이 이유로 듭니다.

우려가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부총리의 뜻은 확고해보였습니다. 지난 8일 브리핑에서도 ‘사교육으로 학생 데이터가 넘어가는 게 온당한가’ ‘돈 벌이에 활용되는 것 아닌가’ 등의 우려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만드는 회사가 데이터를 갖고 지속적으로 플랫폼 성능을 향상토록 해야 한다”며 꼭 필요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사교육 특혜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을 완강히 밀어붙이는 그의 속내를 담당자들에게 들어봤습니다.

현재 사교육은 기업이 소비자와 거래하는 ‘B to C’(기업 대 소비자) 산업입니다. 사교육 업체와 학부모의 거래입니다. 학부모 주머니 사정에 따라 교육의 질이 달라집니다. 경제적 격차가 교육 격차로 대물림됩니다. 이를 ‘B to B’(기업 대 기업) 혹은 ‘B to G’(기업 대 정부) 산업으로 바꾸려는 게 이 부총리의 구상입니다. 사교육이 공교육에서 요긴하게 쓰일 콘텐츠를 만들면 정부나 교육청, 학교가 구매해 공유한다는 생각입니다.

세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듯합니다. 교사 집단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며 경직돼 있는 공교육에 민간의 활력을 불어넣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민간의 아이디어와 최신 에듀테크가 교실을 끊임없이 자극하게 됩니다. 사교육에 접근 가능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격차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죠.

사교육을 서비스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습니다. 사교육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면 정부와 교육 당국이 구매해주고 업체는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새로운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업체들은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하나의 서비스 산업이 될 것이란 생각입니다. 이 부총리가 말하는 ‘에듀테크 생태계’입니다. 미국과 영국 등 교육 선진국에선 이미 이런 변화가 시작됐고 코로나19가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시작점이 AI 디지털 교과서입니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영어·수학·정보 등을 시작으로 2028년에는 거의 전 과목에 적용키로 했습니다. 공교육 현장에 사교육 유입의 교두보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AI는 교사·학생과 상호작용하며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또 이를 자양분삼아 고도화됩니다. 에듀테크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할 ‘좋은 사교육’을 육성하려면 학생 데이터 제공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원대한 그림입니다. 과연 잘 될까요. 일단 학부모와 사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학생·학부모에게 ‘좋은 사교육’이란 결국 좋은 대학의 진학 기회를 넓혀주는 서비스입니다. 대입에 유리한 명문고에 진학시켜주고, 대입에 필요한 내신과 스펙을 따는 데 유용하며, 수능 고득점을 도와주는 사교육이겠죠. 자녀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불리한 위치에 놓이지 않을 경쟁력 있는 타이틀을 주고 싶은 온당한 욕망이 움직이는 시장인 것이죠. 모두가 접근 가능하면 가치는 떨어집니다. 현실적으로 대입은 철저한 ‘제로섬 게임’이니까요. 그 속에서 학부모들은 합리적인 소비자입니다. 학년·학교급을 넘어서는 선행학습과 입시 컨설팅에 지갑을 여는 이유는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시험 범위를 주고 똑같은 시험문제로 등급과 등수를 매기는 표준화된 평가가 좌우하는 입시에서 에듀테크는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가 될 수 있습니다. 교실에 밀어 넣어봐야 학부모는 학교 밖에서 또 다른 사교육을 찾을 가능성이 큽니다. ‘수험 족집게 AI’라면 모를까. 교육부의 ‘좋은 사교육’과 학부모의 ‘좋은 사교육’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선 결국 평가체제를 손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듀테크 생태계는 학생·학부모에게 외면받아 신기루에 그칠 공산이 큽니다. 교육부가 이르면 이달 말 2028학년도부터 적용할 대입제도 초안을 내놓습니다. 이 부총리는 입시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죠. 그러면서도 에듀테크 생태계는 추진한다고 말합니다. 과연 어떤 결론을 내놓을까요.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