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헌책방 일꾼이 고양이상 손님을 만났을 때

입력 2023-06-17 04:02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을 살 수 있고,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는 35초도 살 수 없다고. 일리 있는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출판사 대표도 비슷한 말을 내게 들려준 적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라고. 나는 이 두 가지 말을 합쳐서 새로운 명언을 만들어 보겠다.

헌책방에서 오래 일하려면 책마다 재미있는 의미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좀 어색한 것 같아도 나름 괜찮은 명언이 만들어진 것 같다. 대충 짜깁기한 명언이지만 어차피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로 의미 부여를 하면서 시작부터 이상한 명언을 늘어놓은 것에 심심한 양해를 구한다.

책은 읽어보기 전에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물건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데, 책이란 사람이 쓴 것이어서 그런지 대충 훑어봐서는 잘 모른다. 물론 자세히 읽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책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알쏭달쏭한 책이라는 물건을 손님에게 팔려면 일꾼은 책마다 재미있게 의미 부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헌책방 영업비밀 중 하나다. 책은 묘한 물건이라 독자는 어떤 책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한편 재미도 갖추어야 지갑을 연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무래도 책은 여기 해당이 안 되나 보다.

어쨌든 책은 의미도 있는 데다가 재미까지 갖추어야 읽을까 말까 고민이라도 한다. 헌책방에서 손님이 책장을 보며 뭔가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는 걸 발견하면 드디어 일꾼이 실력을 발휘할 차례다. 가장 쉬운 방법은 손님의 옷차림이나 생김새를 관찰하는 거다. 만약 손님이 고양이가 그려진 옷을 입었거나 가방에 고양이 털 같은 게 붙어 있다면, 혹은 얼굴이 고양이상이라면 고양이에 관련된 지식을 총동원해서 책을 슬쩍 권한다. 물론 이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검은 고양이’처럼 직설적인 책을 권하면 실패 확률이 높다. 정말로 손님이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그런 책은 이미 읽어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헤밍웨이가 열렬한 고양이 팬이라는 걸 아시나요?” 하며 은근슬쩍 말을 건다.

이렇게 고양이와 의미가 연결되면 설령 손님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전에 읽었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여기서 결정타 한 방. “산티아고 노인의 사자 꿈을 떠올려 보면 고양이 30마리와 함께 살았던 헤밍웨이의 성향과 아무래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죠.” 어떤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책 판매 기술이다.

모든 손님에게 이런 기술이 통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성공 확률 30% 정도면 만족하는 편이다. 프로야구 선수도 타율 3할이면 타격왕이 되는데 30% 확률로 책 팔기에 성공하면 서점계에서 MVP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손님이 많지 않은 오후, 나는 책방에 나와 혼자서 이런 의미 부여나 하며 어떻게든 재미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