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앞트임 수술, 국민건강보험으로

입력 2023-06-14 04:03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서는 개를 먹는다지(Where ever you may be, you eat dogs in your country).”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시절 팬들이 부르던 응원가다. 손흥민도 비슷한 조롱을 받았다. 상대편 선수들은 걸핏하면 눈을 찢어 보였다. 개고기와 눈찢기는 서양인이 아시안을 조롱할 때 으레 쓰는 수법이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아시안 혐오는 더 심해졌다. 인종차별적 테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포와 여행객의 안전 대책을 마련하자.

우선 개고기. 대한민국은 대통령 부부가 유기견을 십여 마리나 입양하며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나라다. 개고기를 입법으로 금지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개고기는 일단 제쳐두자. 눈찢는 제스처를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앞트임 수술로 전 국민의 눈을 크게 만들면 된다. 서울에만 500개 넘는 성형외과가 있다고 하니 백신 접종하듯 전투적으로 시행하면 십년 안에 전 국민의 앞트임 수술을 마칠 수 있다. 한국인 눈이 커지면 눈찢는 조롱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비용은 국민건강보험으로 해결하자. 국민 안전을 위한 일이니까.

코로나를 옮긴다는 오해는 어떻게 해소할까. 코로나를 막는 방법은 백신뿐이다.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어느 나라보다 높지만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러니 해외로 출국하는 모든 한국인에게 ‘백신접종완료(vaccinated)’라고 커다랗게 적힌 목걸이를 걸어주자. 작게 만들면 소용이 없다. 하와이에 도착한 관광객에게 걸어주는 꽃목걸이 정도는 돼야 한다. 거대한 목걸이를 덜렁덜렁 매달고 다니면 불편하겠지만 테러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떤가?

앞트임 수술? 백신 목걸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말이 안 되는 줄 알면서 개고기 금지가 말이 안 되는 줄 모른다면 당신의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 개고기 논란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불거졌다. 외국 사람 보기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선진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시절이었다. 이후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시대가 도래하며 선진국 타령이 힘을 잃자 개고기 반대론자들은 전략을 바꿨다. 이른바 ‘동물복지’다. 개가 뜬장에 갇힌 모습, 도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개농장의 비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개고기 종식뿐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오늘날 개농장 비극의 주범은 개고기에서 펫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자기들도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고 선전하고 있다만, 그들 논리대로라면 반려견 종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반려동물 등록 의무제에도 등록률은 절반도 못 되고, 1년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10만 마리가 넘는다. 이렇게 동물을 쓰고 버리는 물건 취급하는 나라에서 개고기 금지를 논하다니, 시기상조다.

개통령 강형욱씨가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다. “저는 논리가 없어요. 그냥 안 먹었으면 좋겠어요.” 차라리 그가 솔직하다. 개고기 금지는 논리가 없다. 개 좋아하는 사람이 개를 먹지 않는 건 좋다. 남들에게 먹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법으로 금지하는 건 안 된다. 대한민국에 개 먹는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더라도 법제화는 안 된다.

소수자를 배려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다. 무슬림이 할랄 푸드를 찾고 채식주의자가 비건 메뉴를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유난 떠는 짓이 아니다. 그런데 개고기는 안 된단다. 동물복지니 기후위기니 그럴듯한 명분은 전부 ‘여우와 신포도’ 같은 핑계다. 서양인이 개를 먹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개 먹는 사람은 눈 찢어지고 코로나 옮기는 미개한 아시안뿐이라는 인종차별 때문이다. 편견은 계속된다. 혐오와 조롱도 계속된다. 싸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나는 싸우겠다.

장유승(성균관대 교수·한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