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증권이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상품에 투자한 기업들에 합의금 등 명목으로 1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보전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 손실 보전은 현행 자본시장법상 위법 행위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개인투자자에게 ‘자기책임 원칙’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고객 대부분이 법인인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자발적으로 보전해 준 행위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12일 SK증권 등에 따르면 SK증권은 지난 3월 자사 채권형 신탁에 가입한 법인 A사가 투자 자산 평가손실 및 환매 연기에 대한 법적 대응을 시사하자 수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합의금 규모는 신탁 자산에서 발생한 평가손실분에 상응했다. 이 같은 손실 보전 사례는 수십건으로, 규모는 1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손실은 SK증권의 랩·신탁 상품에서 만기 불일치 운용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동안 증권사들은 관행적으로 머니마켓랩(MMW), 채권형 신탁 등 단기 상품으로 유입된 고객 자금을 장기채에 투자해 운용해왔다. 장기 캐피털채 등의 금리가 단기채보다 높다는 점을 이용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 금리가 급등하면서 장기채 가격이 폭락했다. 이에 증권사들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만기가 돌아온 고객들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SK증권도 신탁 상품의 수익률 관리 목적으로 기업어음(CP)을 사고파는 등 ‘돌려막기’ 거래를 하다가 수백억원의 평가손실을 보면서 만기가 도래한 법인 투자자들에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환매 연기로 피해를 본 A사 등은 SK증권이 불건전 운용 관련 피해에 책임을 질 것을 주장하며 민사 소송 준비에 돌입했다. 법적 리스크가 불거지자 SK증권은 A사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손실분에 상응하는 규모의 합의금을 제시했고 지난 3월 합의에 도달했다.
SK증권 관계자는 “만기 불일치 운용 방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신탁계약서에 포함됐다”면서도 “투자자의 환매 요청에 즉각 응하지 못한 점, 만기 연장이 필요한 사항 등에 대한 설명이나 통지가 미흡한 점 등의 책임을 감안해 합의에 이른 것”이라고 밝혔다.
임송수 김진욱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