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핵심기술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기술을 대거 빼돌려 중국 현지에 ‘복제 공장’을 지으려 한 삼성전자 전직 상무 A씨가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기존의 단건 기술 유출 사건 수준을 넘어 국내 메모리 반도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인물이 중국 지방정부의 자금 투자를 받아 범행을 기획·지시했다는 점에서 사안을 엄중히 보고 추가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박진성)는 12일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을 통째로 가져다 중국 현지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고 한 A씨를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범행에 가담한 전 삼성전자 직원 3명과 전 삼성 계열사 직원 2명, 전 협력사 직원 1명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1984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입사해 18년을 근무하고 상무로 퇴직했다. 옮겨간 하이닉스에선 10년간 부사장을 지냈다. 업계에서는 하이닉스 회생 및 반도체 생산성 향상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까지 수상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불법 취득한 기술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BED(Basic Engineering Data·불순물이 존재하지 않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술)와 공정배치도, 공장 설계도면 등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현재까지 수사에서는 기밀 유출 사례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2018~2019년 중국 청두시 자본 4600억원으로 반도체 업체를 설립하고, 대만 전자제품 업체로부터 8조원 규모 투자 약정을 받아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국내 반도체 인력 약 200명을 고액 연봉을 주고 영입했다. 검찰은 A씨가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인재들을 유인했다고 본다. 기존 임금의 2배 이상을 제시하고, 중국 이주 시 자녀들의 국제학교 비용도 보장했다고 한다.
반도체 공장 BED는 A씨와 함께 기소된 삼성전자 출신 B씨가 2012년 회사를 퇴사하며 무단으로 가지고 나왔고, 설계도면은 삼성전자 협력사 출신 C씨가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삼성전자 시안 공장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 복제 공장을 지으면서, 자신의 업체로 영입한 B씨 등에게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자료를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공범 상당수는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시를 내릴 때 삼성전자를 직접 지칭하지 않고 익명화된 명칭을 썼는데, 검찰은 수사를 피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2019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중국에 체류하던 A씨가 지난 2월 병원 치료 등을 이유로 입국했을 때 검거했다.
대만 업체가 약정한 8조원 투자가 불발되면서 공장이 실제로 건설되지는 않았다. 다만 A씨가 청두시 투자를 받아 설립한 업체는 지난해 현지 연구개발동이 완공되면서 삼성전자 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이 생산됐다.
검찰은 삼성전자 측의 피해 금액을 최소 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검찰 관계자는 “유출된 기술에 중국의 낮은 인건비가 결합돼 반도체가 생산될 경우 한국의 국제시장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매출 감소까지 고려하면 (삼성 측) 피해액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