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부캐 ‘인쏭’ ‘훈장’으로 불리는 목사… 교회·세상 경계 허물다

입력 2023-06-13 03:04 수정 2023-06-20 11:06
경기도 양평에 있는 ‘책보고가게’의 내부 전경. 15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 이 책방은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경인중앙선 양평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10분 정도 더 달려 목적지인 ‘책보고가게(책방지기 황인성 백흥영 목사)’에 도착했다. 양평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은 평일에는 작은 동네 책방, 주말에는 교회로 변한다.

지난 11일 방문한 책보고가게는 이른 시간인데도 어린아이부터 장년에 이르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예고 없이 내린 소나기로 가게 앞마당에 깔린 흙은 비를 머금어 고동색으로 변했다.

확 트인 마당에 있는 2층 규모의 건물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교제의 공간, 꿈과 비전을 발견하는 보금자리다. 서점과 카페, 세미나실 등으로 운영되는 ‘가게’는 밝은색 나무 마감재가 벽을 두르고 있었고 환한 조명이 편안한 느낌을 줬다. 가게 안쪽 서점에는 인문·사회과학, 청소년, 영어 동화책 등이 주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교 서적도 눈에 띄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하면 적었다.

지역사회와 교회의 담을 허물다

오후 1시가 되자 10명의 중년 남녀가 가게를 찾았다. 은퇴 직장인들을 위한 정원 가꾸기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은 긴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차를 권했다. 강사가 화분에 관해 설명을 시작하자 노트와 볼펜을 꺼내 받아적기 시작했다. 마치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 교회라는 공간이 지역사회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광경이었다. 책보고가게의 책방지기이자 공명교회의 공동 목회자인 황인성(44)·백흥영(46) 목사는 주민들의 공간이 양평의 사랑방이 되길 바라며 함께 사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골 동네 문화 플랫폼으로
벽 한 쪽에 전시된 추천도서 목록.

책보고가게가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었던 이유는 교회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책방, 서점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비신자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책보고가게에서 한 달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만 15개가 넘는다. 대부분 책과 관련된 모임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모임부터 중국어·정원 수업, 책 놀이 등 전 세대를 아우른다. 소박하게 시작한 책방은 주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황 목사는 “최근 양평으로 젊은 부부 유입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주변 네트워크와 육아 인프라가 약한 편”이라면서 “책보고가게가 이런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공간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평이 생태 도시로 선정된 만큼 환경 보호와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애기) 등과 관련된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백 목사는 “양평군이 생태 도시로 선정된 것에 비해 환경 관련 모임이 부족하다”면서 “제로 웨이스트 모임과 환경·평화 관련 모임을 만들어 지속해서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주일 성도’에서 ‘주중 성도’로

공명교회는 2018년 6월 첫 예배를 드리고 지금까지 작은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외형적 성장을 좇는 교회와는 정반대의 목회 스타일을 추구한다. 제일 먼저 심방을 없앴다. 대신 ‘주중 성도’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교회는 주제를 정해 성도들이 평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림책을 활용한 가정예배를 시작으로 화목한 가정예배, 이슈형 가정예배, 라디오 가정예배 등이다. 이런 목회는 오히려 성도들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원동력이 됐다.

공명교회와 책보고가게의 지향점은 사명선언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삼위 하나님의 삶이 우리에게 와서 맞울리고,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맞울려져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게 한다.’ 이 문장을 완성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책보고가게의 또 다른 이름은 ‘맞울림 도서관’이다. 책보고가게를 통해 교회와 세상이 함께 울려 두 공간 사이의 벽을 허문다는 의미다.

‘부캐’로 가나안 성도에게 한발짝
책보고가게의 책방지기이자 공명교회 공동 목회자인 황인성(왼쪽) 백흥영 목사.

두 목사는 실제로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가나안 성도’를 마주할 기회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이들은 목회자가 아닌 ‘부캐(부가 캐릭터)’로 활동하기도 한다. 책방에서 황 목사는 ‘인쏭’으로, 백 목사는 ‘훈장’으로 불린다.

백 목사는 “가나안 성도들은 교회에 대한 상처가 있어 반감이 심하다. 주중에는 목사 대신 부캐로 불린다”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교인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경계를 허물고 다가온다”고 말했다. 부캐가 더 익숙한 아이들은 주일에도 목사 대신 부캐로 이들을 찾는다. 물론 거부감은 없다.

두 목사는 자신들만의 교회론에 대해서도 말했다. 목회 대상은 교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경계는 없다.

백 목사는 “교회가 세상의 시선과 많이 다르므로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까지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 같다”며 “교회가 비신자들에 접근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 목사도 “책보고가게가 교회와 세상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양평=글·사진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