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새 대법관 후보자로 중도 성향 인사 2명을 임명제청하면서 ‘사법부 진보벨트’의 지각 변동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후보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임명되면 대법관 14명 중 중도·보수 성향은 6명에서 7명으로 늘어난다.
지난 3~4월 윤석열정부에서 새로 취임한 헌법재판관 2명도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재판관 9명 구성도 중도·보수 성향이 4명에서 5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오는 9월 김 대법원장, 11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잇따라 퇴임하면 대법원과 헌재의 중도·보수 색채는 한층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이 9일 임명제청한 서경환(사법연수원 21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권영준(25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뚜렷한 정치 성향이 없는 중도 인사로 분류된다. 서 부장판사는 재판 실무와 사법행정, 도산법 분야에 두루 능통한 ‘정통 법관’으로 꼽힌다. 권 교수는 민법 전문가로 통한다.
신임 대법관 후보자들은 중도로 분류되는 조재연 대법관,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박정화 대법관의 후임이다. 두 후보자가 임명되면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13명의 ‘중도·보수’ 대 ‘진보’ 구도는 7대 6으로 중도·보수 우위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퇴임하는 김 대법원장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하면 이런 흐름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현직 대법관 14명 중 김 대법원장,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노정희 박정화 이흥구 오경미 대법관 6명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 및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김선수 대법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이다. 젠더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민유숙 대법관도 소수자 목소리를 반영한 진보적 판결을 다수 내렸다.
헌재도 중도 성향의 김형두 재판관과 정정미 재판관이 지난 3~4월 취임해 진보 색채가 옅어졌다는 평가다. 현재 재판관 9명 중 유남석 소장, 문형배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이 우리법연구회 등 출신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3월 김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앞두고 “특정 단체 출신 편중 인사를 하지 말라”고 견제했었다. 이어 지난달 30일 대법관 후보추천위가 후보 8명을 발표하자 ‘특정 후보자가 제청되면 대통령이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신임 헌법재판관 2명에 이어 대법관 후보자 2명을 모두 중도 인사로 선택해 극한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다.
고위 법관 출신 한 변호사는 “김 대법원장이 대통령 임명권을 존중하는 선택을 한 것”이라며 “지난달 30일 대법관 후보군 발표 후 최종 임명제청까지 너무 긴 시일이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비교적 원활하게 조율이 이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원 신지호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