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 또 다른 씨앗 ‘디지털 경제’

입력 2023-06-12 21:21

미·중 간 디지털 경쟁은 ‘GAFA vs. BAT’라는 상징적 문구로 요약 가능하다. GAFA는 미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약자다. 구글(Google) 애플(Apple)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을 말한다. 반면 BAT는 중국에서 급성장해 세계 시장으로 규모를 넓힌 디지털 기업들이다.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 등 이 세 곳은 중국 IT 기업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양국 기업들의 미·중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기업 간 경쟁은 국가 간 경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도체 패권 경쟁마냥 디지털 경제에서도 양국이 부딪힐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사회에서 디지털세 도입을 비롯한 통상 규범 마련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경제가 또 다른 미·중 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경제, 뭐길래

디지털 경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모든 경제활동으로 정의된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분배, 소비 등 전통적인 경제활동이 디지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규모가 커지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대체한 전자상거래 시장, TV·영화관을 잠식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표 사례다. 이 외에도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기존 오프라인 시장을 변화시킨 사례는 무궁무진하며 아직도 진화 중이다.

디지털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 꼽힌다. 미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즐비한 실리콘 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디지털 경제 전환을 주도해왔다. 중국은 2015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인터넷+ 행동 방안’을 제시한 후 정부 주도로 디지털 기업들을 키워왔다.


방식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독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 세계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순위 1~10위는 모두 미·중 기업이다. 1~10위 내에 미국 기업 5곳, 중국 기업 5곳이 이름을 올렸다.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의 시총이 1조9170억 달러(약 2480조원)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기업 중에서는 전자상거래 강자인 텐센트가 5628억 달러(약 728조원)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중국을 키우다

기업들의 성장은 미·중 양국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 규모를 더 키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12일 유엔 무역개발협의회에 따르면 미국의 디지털 서비스 무역 규모는 2011년 6110억 달러(790조3285억원)에서 10년 뒤인 2021년에는 9634만 달러(1246조1579억원)로 늘었다. 10년간 증가율이 57.7%나 된다. 중국의 성장속도는 더 빠르다. 중국의 디지털 서비스 무역 규모는 2011년 1648억 달러(213조1688억원)에서 2021년에는 3124억 달러(404조894억원)로 89.6% 급증했다. 중국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양국 간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2011년만 해도 세계 7위 규모였던 중국은 10년 만에 5위로 올라서면서 1위인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이 격차는 더 좁혀졌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보고서에 따르면 유네스코(UNESCO)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39개국 4억2000만명의 학생에게 중국 알리바바가 개발한 딩톡(Dingtalk) 메신저를 사용한 원격 교육을 권장했다. 알리바바는 자체 전자 무역 플랫폼인 ‘eWTP’를 통해 77개국에 2000만개가 넘는 마스크 등을 수출하기도 했다. 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원격회의 서비스인 부브 미팅(Voov Meeting)은 지난해 유엔 75주년 파트너로 선정됐다. 수천 건의 유엔 온라인 행사가 부브 미팅을 활용했다. 이는 기업 실적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그만큼 중국의 디지털 무역 규모도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세, 게임 체인저될까


미·중 양국이 지닌 디지털 경제 아성은 새로운 국면과 마주하고 있다. 당초 올해부터 과세를 목표로 했던 디지털세 때문이다. 디지털세란 다국적 디지털 기업이 매출 발생국에 세금을 내는 제도다. 연결매출액 200억 유로 이상인 기업 등 복잡한 기준이 있지만 이를 충족할 경우 과세 대상이 된다. 142개국이 합의한 국가별 단독 과세 금지 조항이 잘 지켜진다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해외 매출이 많은 글로벌 기업들을 다수 보유한 미국에게 특히 불리한 구조다. 미국은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은 국가들이 많은 만큼 해외에 세금을 낼수록 국내 세수가 감소하게 된다. 반면 중국은 자국 시장 중심으로 디지털 서비스 시장을 만들다보니 상황이 다르다. 이승신 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자국 영향권 내 국가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을 펼치고 있어서 디지털세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세로 인한 지형도 변화는 양국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전 세계디지털 플랫폼 시총의 90%, 초대형(하이퍼 스케일) 데이터 센터의 50%, 인공지능 스타트업 자금의 94%를 점유하고 있다. 반도체처럼 양국이 디지털 경제를 놓고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경제는 잠재적인 미·중 갈등 요인”이라며 “먼저 갈등이 불거지는 분야가 금융인지 전자상거래 측면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