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 감사인 지정 사유 완화… “회계 투명성 강화 제도 후퇴”

입력 2023-06-12 04:04

금융당국이 기업 회계관리·감사 규제를 일부 완화한다. 가장 큰 쟁점이던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지정감사제)는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지만, 감사인 직권 지정 사유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자산 2조원 미만 상장사에 대한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도 5년 유예키로 했다(국민일보 4월 18일자 10면 참조).

금융위원회는 11일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2017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를 계기로 마련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의 신(新)외부감사법을 보완한다는 내용이다. 이 제도는 ‘회계 투명성 제고’라는 평가와 ‘기업의 감사 부담 증가’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기업과 회계업계 간 갈등이 지속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 회계개혁 평가·개선추진단을 꾸리고 개선책을 모색해왔다.

금융당국은 지정감사제를 ‘6+3’(기업 자유선임 6년, 금융당국 지정 3년) 방식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자유선임 비중을 늘리는 ‘9+3’, ‘6+2’ 등의 대안을 놓고 고심했지만 정책 효과를 충분히 분석할 만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지정대상 기업 중 지정감사를 수감하지 않은 비중이 40%에 달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금융당국은 또 자산 2조원 미만 상장회사에 대한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감사 시기를 기존 2024년에서 2029년으로 5년 미룰 수 있게 했다. 내부회계관리제도는 신뢰성 있는 회계정보의 작성·공시를 위해 전산시스템으로 회계처리를 하게 하는 내부통제시스템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회계학회 연구 결과에서 자산 2조원 미만 상장회사의 회계 투명성 제고 효과가 뚜렷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조원 이상 상장사라도 요청 시에는 최대 2년간 유예를 허용하기로 했다. 중소 비상장사(자산 1000억~5000억원)가 신규 상장할 경우 내부회계 외부감사도 3년간 유예된다.

직권 감사인 지정 사유도 완화한다. 대우조선해양 사태 이후 외부감사법을 개정하며 직권 지정 사유를 확대(11개→27개)했는데, 이중 다시 16개를 폐지·완화하기로 했다. 직권지정 사유 완화로 정부는 감사인 지정 비중이 4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정감사 때 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됐던 점도 고쳤다. 회계법인이 일방적으로 정했던 감사시간을 기업과 합의한 뒤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지정 감사인이 산업 전문성이 없을 경우 불이익을 부과하기로 했다. 지정감사인과 기업 간 중립적 분쟁조정기구도 신설된다.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제도가 도입 5년 만에 후퇴했다는 비판은 커지고 있다. 이르면 내년 이후에야 개선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는 지정감사제를 둘러싼 논란도 언제든 재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장은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올해 사업보고서가 2024년 3월 나온다. 2025년 3월 누적 데이터를 또 검토해야 할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재희 김혜지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