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인구 급증하는데… 퇴행하는 요양시설 예산

입력 2023-06-12 04:05

정부가 내년도 공립 노인요양시설 확충 예산을 줄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집행률이 부진하다는 이유인데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관련 기반시설 구축이 더디다는 지적이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노인요양시설 확충 사업 예산으로 438억원을 요구했다. 이는 지난해 예산(548억원)보다 20% 줄어든 금액이다. 2020년 864억원이던 해당 예산은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노인요양시설 확충 사업은 5가지로 구성된다. 그중 핵심은 공립 노인요양시설 확충이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설립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면, 지자체가 나머지를 부담해 공립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한다.

현재 공립 노인요양시설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 노인요양시설 2만6547개 중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곳은 246곳에 불과하다. 전체 노인요양시설 중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복지부는 삭감 원인으로 부진한 예산 집행을 들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31일 기재부에 제출한 ‘2022 회계연도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 보고서’에서 “다년간에 걸친 사업 추진이 요구되는 건축공사 특성상 착공 전 부지확보 등 사전 절차가 장기간 소요돼 실집행이 부진하다”고 밝혔다.

국비 지원을 받아도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지자체가 요양시설 신설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사업이 부진한 한 이유다. 최근 3년간 노인 요양시설 확충 사업의 평균 예산 집행률은 2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복지부는 예산 집행률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치매 전담형 공립요양시설 신축 사업 예산 편성 시 사업 기간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3년에 걸쳐 지원하던 금액을 4년에 걸쳐 교부하면서 예산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총사업비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자체의 참여를 독려해 예산 집행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 수치 개선이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해당연도 예산 집행률은 높아질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이 활성화되는 방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노인 인구를 고려해 관련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요에 맞춰 공립 노인요양시설 비중이 높아질 수 있도록 예산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30만명을 돌파했고, 내년이면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