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케냐, 필리핀 등 한국을 찾은 다국적 신학자들이 강의실을 벗어나 ‘생태 정의’를 외쳤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 동안 서울 연세대학교 등에서 이어진 국제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다.
신학자들의 현장 탐방은 지난 9일 강원도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 예정지와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등 서울 시내 기독교 유적지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기자가 동행한 강원도 홍천군 가락재로의 양수발전소 건설 예정지에는 학회 참가자와 봉사자 등 25명이 방문했다. 이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홍천 양수발전소 백지화하라’ ‘주민생존권 말살하는 양수댐 결사반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양수발전소는 건설 과정에서 생태계 파괴를 피하기 어렵고 수몰 지역이 발생하면서 원주민의 토지 강제수용 문제가 뒤따른다.
원주녹색연합 공동대표인 박성율(강원생명평화기도회 담당) 목사는 “발전소 건립이 예정된 지역은 법정 보호종이자 멸종위기종 2급인 담비와 수달, 천연기념물인 참매 등이 서식한다”며 “서울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송전탑 건설도 예정돼 있다. 이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건 지역의 주민과 동물들”이라고 설명했다.
신학자들은 마을회관을 찾아 지역주민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주민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의 선언문도 작성했다. 이들은 “성경에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자비를 중시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은 신자유주의 세계의 복잡한 구조 속에서 의도적으로 무시당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난 홍천 주민들과 연대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케냐 출신의 키플레팅 세우레이(한신대 박사과정)씨는 “환경 문제는 우리 삶에 직결된다는 생각에 홍천 탐방을 선택했다”며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 땅, 동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임을 실감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독일에서 온 마르코 제스케(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 박사는 “하나님은 환경과 불평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며 “기독교인이라면 기후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실천신학회 정기학술대회에는 26개국에서 온 90여명의 실천신학자들이 참석했다. ‘인류세’를 주제로 논문 발표도 이어졌다. 인류세는 지질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로, 환경파괴로 인한 대멸망을 경고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천=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