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산업사회가 인간을 파괴한다는 신념으로 17년간 ‘우편 폭탄’ 테러 수십 건을 저질러 미국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한 ‘유나바머(Unabomber)’ 테드 카진스키(81)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10일(현지시간) 무기징역형을 받고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교도소에 수감됐던 카진스키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카진스키는 1978~95년 대학 항공사 기업의 고위인사 수십명에게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3명을 숨지게 하고 2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유나바머는 대학(university)의 앞글자 ‘un’과 항공사(airline)의 앞글자 ‘a’에 폭탄제조자(bomber)란 단어를 섞어 만든 FBI의 코드네임이었다.
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 이민자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걸어 다니는 브레인’으로 불린 천재였다.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했고, 16세에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으며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4세 때 UC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됐다.
그러나 2년 뒤 카진스키는 별다른 이유 없이 사직한 뒤 고무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몬태나주 로키산맥의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문명 세계와 스스로 단절한 것이다. 사냥과 채집으로 자급자족하며 촛불로 도서관에서 빌린 전문서적을 읽었고 가족과도 교류하지 않았다.
NYT는 “그가 왜 고립에 빠졌는지 명확하지 않다”면서 “70년대 몬태나 오두막이 인근 부동산 개발로 침범당하자 과학·산업·기술 문명의 환경파괴에 강한 증오심을 갖게 된 게 테러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카진스키는 폭탄에 지문을 일절 남기지 않고 발송처도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들며 FBI의 추적을 피했지만 자신의 테러를 정당화하는 3만5000 단어 분량의 ‘산업사회와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낸 일을 계기로 체포됐다. 선언문은 ‘기술 발전은 인류의 재앙이며 산업사회를 전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은 카진스키의 동생 부부가 “형의 문체를 연상시킨다”고 FBI에 제보했고, FBI가 오두막을 급습해 그를 검거했다.
NYT는 “카진스키의 범행은 폭력으로 주장을 설파하려는 테러범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면서 “잔혹한 테러리스트이면서 현대 기술 문명의 환경파괴를 예고한 선지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로도 만들어졌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