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이 5곳으로 늘었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그리고 엔비디아다. 이 기업들은 공통점을 지닌다. ‘파괴적 혁신’이 시장을 바꾸는 변곡점마다 등장해 독점적 지위를 획득하고 승자로 올라섰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산업 생태계의 지각변동마저 예고하고 있어 한국 산업계도 철저한 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달 31일에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장중 한 때 419달러를 기록했고,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넘어섰었다.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중 최초였다. 미국 기업 가운데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 엔비디아 주가는 조정에 들어갔고, 시가총액은 9일 기준으로 9576억 달러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2분기에 사상 최대인 110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올린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주가는 조만간 다시 뛰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가 인텔, 삼성전자, TSMC와 같은 ‘반도체 강자’를 제치고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먼저 안착한 배경에는 ‘생성형 AI’가 자리한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절대 강자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인 엔비디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영 전망이 불투명했다. 가상화폐 이더리움이 채굴 방식을 변경하면서 GPU 수요는 급감했고, 코로나19 엔데믹으로 PC 수요도 함께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챗GPT를 필두로 하는 생성형 AI가 급부상하면서 엔비디아의 기업가치가 치솟았다. 지난해 말에 주당 146달러 가량이던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9일 기준 387.7달러까지 수직상승했다. 중앙처리장치(CPU)는 한 번에 하나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반면 GPU는 여러 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병렬로 처리한다. 데이터 양이 적을 경우 CPU만으로도 무리가 없었지만, AI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다룬다면 GPU를 이용해 동시에 여러 데이터를 처리하는 게 유리하다.
여기에다 엔비디아는 AI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솔루션을 만들어 AI ‘풀스택’을 구축했다. AI 반도체 뿐만 아니라 슈퍼컴퓨터, 클라우드, 각종 솔루션까지 고객 필요에 맞는 모든 걸 제공한다. AI 시대가 본격화해도 엔비디아의 독주가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혁신 기업’의 시가총액 1조 달러 문을 연 것은 애플(2008년)이다. 1979년 나스닥 상장 38년 만이자 미국 IT 기업 최초였다. 애플은 개인용 PC 시장을 열었고, 아이팟으로 음악 시장을 변화시켰다.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면서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현재 2조8460억 달러까지 올라섰다. 애플은 최근 ‘공간 컴퓨터’로 명명한 ‘애플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중이다.
알파벳(구글)은 스마트폰 시대를 장악하며 2020년 1월에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검색엔진에서 시작한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에 지메일, 유튜브 등을 무료 제공하며 세계인들이 즐겨쓰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제프 베이조스가 차고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창업한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시장의 지배자다. 아마존이 클라우드 1위 업체인 AWS를 보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동화, 전산화에 클라우드와 AI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미국 최대 유기농 식품업체 홀푸드, 온라인 약국 필팩 등을 인수하고 우주선 업체 블루 오리진을 설립하며 외연도 넓히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한동안 부침을 겪었던 MS는 사티아 나델라 CEO 부임 이후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으로 지난 2019년 5월에 시가총액 1조원을 달성했다. MS는 챗GPT를 업고 AI 시대 반격에 나서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