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의사들, 요양병원 어르신 노리는 ‘옴’ 퇴치 나섰다

입력 2023-06-12 20:58
대한피부과학회 소속 전문의 등 의료진이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왼쪽 위는 암컷 옴진드기의 모습. 나머지 동그라미 안 사진은 온 몸과 손가락 사이, 손바닥에 발생한 옴 질환. 피부과학회 제공

지난해 7월 인천의 한 요양원에 머무르던 80대 여성이 전염성 강한 피부질환인 옴에 걸려 책임 소재를 놓고 환자와 요양원 측이 갈등을 겪은 바 있다. 2021년 4월에는 코로나19로 면회가 금지된 목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노인 환자가 옴에 감염된 사실을 가족이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 2020년 10월 추석 연휴에는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옴에 걸린 사실을 모른 채 집으로 모셨다가 가족 12명이 감염돼 화를 입은 사례도 있었다.

요양병원·요양원 등에서 후진국병으로 불리는 옴에 걸리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위생 환경이 좋아지며 전국민의 옴 발병률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으나 노인 인구와 요양시설 증가, 옴에 대한 교육·인식 부족, 청결한 환경 및 ‘잠행 옴(오진된 옴으로 오랫동안 치료받지 못해 비전형적 증상을 보임)’으로 인한 진단 어려움 등의 이유로 장기요양시설에서 집단 발병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대한피부과학회가 최근 대한요양병원협회, 질병관리청과 손잡고 ‘옴 퇴치 국민건강사업’에 나섰다.

옴은 육안으론 식별이 어려운 작은 크기의 옴진드기에 의해 옮는다. 암컷 진드기는 사람 피부에 닿으면 30분 동안 표피에 굴을 파고 기생한다. 수컷은 교미 후 이틀 내 죽으므로 암수의 비율은 약 10대 1이다. 피부 굴 파기와 산란을 반복하며 1~2개월 간 40~50개 알을 낳는다. 50일이 지나면 25마리, 100일이 경과하면 500마리까지 불어날 수 있는 것. 사람이나 개 등을 숙주로 삼고 숙주를 떠나서도 24~36시간 생존하며 감염도 가능하다. 주된 전파 경로는 직접적인 피부 접촉과 오염된 옷·침구류·수건 등의 노출이다.

국내 옴 유병률은 1970년대 전체 인구의 3~7%에서 1980년대 초 5~10%로 증가하다가 1990~2000년대 초반에는 0.1~0.2%로 떨어졌다. 2000년대 후반부터 0.6~1.2%로 다시 높아졌는데, 노인 요양시설에서 감염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게 학계 진단이다.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옴 진료 환자는 2012년 5만284명에서 2021년 2만9693명으로 줄었다. 코로나19 직전 2019년까지는 매년 4만명대 환자가 꾸준히 발생했다. 경희의료원 피부과 정기헌 교수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요양병원 등에서 옴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 몇 가지를 꼽았다.

옴의 특징적 증상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심한 가려움이다. 특히 손가락 사이, 손목 접하는 부위, 남성 생식기 주변, 여성의 가슴, 겨드랑이, 발가락·발목 등이 매우 가렵고 붉은 발진, 딱딱한 결절, 물집, 딱지 등이 동반된다. 정 교수는 “요양시설에선 입원·입소자들의 피부 감각 둔화, 의사 표현의 어려움 등으로 옴의 가려운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 노인은 피부 자체가 건조하고 여러 약물을 복용하는 관계로 가려움증을 겪는 환자가 많아 진단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단체생활로 환자들 간 밀접 접촉이 많고 혈압계·침구 등 물품을 공유하기도 해 옴이 번식·전파되기 좋은 환경이다. 전염성이 아주 강한 ‘딱지옴’의 형태가 많은 점도 집단 발생을 쉽게 한다. ‘노르웨이 옴’으로 불리는 딱지옴은 병변에 수많은 옴진드기가 들어있으며 벌집 모양 공간이 많은 각질과 딱지가 특징이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이양원 교수는 “지난 10년간 연령별 옴 현황을 살펴보면 환자 수는 50대, 60대, 80대 이상 순이었으나 인구 10만명 당 발생 비율은 80대 이상, 60대, 70대, 50대, 20대, 40대, 30대 순으로 높았다”면서 “요양병원·시설 내에서 70대, 80대 이상이 먼저 감염되고 가족이나 간병인, 의료인 등 전 연령대로 퍼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기관별 환자 수는 의원급이 79.9%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의심 증상이 있을 시 옴 환자와 가족·간병인 등이 동네의원을 가장 먼저 찾기 때문으로 보인다. 따라서 옴 발생 장소와 이용 의료기관의 불일치 현상으로, 요양병원 등의 실제 환자가 과소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옴은 임상 증상과 함께 피부에 옴진드기 굴, 가족의 감염력, 요양병원·시설 입원 및 방문력 확인 등을 통해 최종 진단한다. 치료는 목에서 발끝까지 전신에 바르는 연고제(밤에 바르고 다음 날 아침 씻어냄)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하고 나아지지 않으면 먹는 약(이버멕틴)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약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신청 가능해 긴급히 필요 시 도입 절차 간소화가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옴 환자가 쓴 의류나 침구류 등은 세탁 후 3일간 사용해선 안 된다, 세탁할 수 없는 의류는 1주일간 비닐 백에 넣어 봉해뒀다 재사용할 수 있다.

피부과학회는 지난 2월 요양병원협회와 협약을 맺고 전국 240여개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전담 피부과 전문의를 지정해 직접 방문 진료 혹은 비대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대상 요양병원 수를 늘리고 요양원 등 다른 노인 시설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표준화된 임상진료지침도 마련해 보급에 들어갔다.

김유찬 피부과학회장은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되고 고령화로 인해 집단 시설 입소가 늘면서 전염성 큰 감염병인 옴의 발생 증가를 경계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면서 “옴의 박멸은 힘들겠지만 거의 퇴치할 수 있을 때까지 선제적 예방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