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의혹 970명 수사 의뢰… 중개사·보조원이 414명

입력 2023-06-09 04:04

임대사업자 A씨는 공인중개사 등을 통해 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비싼 오피스텔 29채를 사들였다. 여기에 드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을 현금으로 받는 일도 있었다. A씨는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보수를 초과하는 수준의 높은 리베이트를 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전세가가 하락하면서 계약 당시 전세가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A씨는 보증금을 무더기로 돌려주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조직적인 전세사기 의심 사례 1322건을 적발하고 970명을 수사 의뢰했다고 8일 밝혔다. 수사 의뢰한 970명 중에는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이 414명으로 가장 많았다. 임대인은 264명, 건축주 161명, 분양·컨설팅업자 72명 등이었다.


경찰은 국토부의 수사 의뢰 등을 토대로 불법 중개행위를 한 공인중개사 등 486명을 검거하고, 전세사기 대상 부동산의 감정평가액을 고의로 부풀린 감정평가사 등 45명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중개했거나 전세사기 대상 부동산 감정평가액을 고의로 부풀린 혐의를 받는다.

국토부는 전세사기에 연루된 공인중개사가 다수 적발된 만큼 공인중개업에 대한 개혁 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달부터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가동해 다음 달 중 구체적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보증금 피해 규모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 강서구가 83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경기 화성시 238억원, 인천 부평구 211억원 등 수도권에 피해가 집중됐다. 국토부는 전체 피해 규모를 2445억원으로 추산했는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수사 과정에서 피해 현황을 추가로 접수해 피해 규모는 4599억원으로 불어났다.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는 2996명에 달했다. 30대가 1065명(35.6%)으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563명(18.8%)으로 피해자 10명 중 5명 이상이 20·30대 청년이었다.

경찰은 무자본 갭투자로 보증금을 편취하거나 전세 자금 대출사기 등에 연루된 대규모 전세사기 조직 31개를 적발했다. 이 중 6개 조직에 대해서는 형법상 범죄단체 등의 조직 혐의를 적용했다. 황병주 대검찰청 형사부장은 “범죄단체나 집단이 되면 범죄수익을 추징하고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며 “선고가 될 때 양형인자로 반영돼 선고형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보증금을 돌려줄 가능성이 없는데도 시세 차익을 노리고 자본 없이 대규모 투자를 계속했다면 전세사기로 판단해 수사·기소한다는 방침이다. 집값이 떨어져 깡통전세가 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데도 정상적으로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것처럼 세입자를 속이면 사기 범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황 부장은 “무자본 갭투자의 경우 문서를 위조하거나 허위 진술 등이 결합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사기 범죄로 나아가기 쉽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