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秋 부총리에 “전출 막지 말라” 들썩인 기재부 게시판, 왜

입력 2023-06-09 04:04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이른바 주요 정부 부처의 위상이 나날이 하락하고 있다. 한때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과도한 업무와 인사 적체로 전출을 원하거나 퇴직을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재부의 경우 정부 규정 탓에 전출이 여의치 않자 장관을 향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8일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내부 익명 게시판인 ‘공감소통’에 ‘부총리님, 전출을 막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다른 부처로 전출을 하려는 직원은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며 “자유롭게 나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글에는 2주 만에 7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모두 기재부의 업무 환경 개선과 자유로운 전출·전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인사혁신처의 ‘1대 1 트레이드’ 지침에 따라 기재부를 포함한 공무원의 타 부처 전출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만약 기재부 4급 서기관이 다른 부서로 가려면 같은 급수의 공무원이 기재부로 전입 신청을 해야한다. 기재부 인사팀은 전입 직원의 능력도 심사한다. 문제는 기재부를 나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오려는 인원이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기재부 직원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기재부 익명 게시판은 업무 환경을 성토하는 글로 가득한 상황이다. 직원 A씨는 “업무량이 너무 많은데 부서에 사람이 없다”며 “번아웃이 와도 꾸역꾸역 일해야 하는 게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B씨는 “업무 펑크가 나도 다 담당자 책임”이라며 “더 이상 조직이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비판했다.


C씨는 “기재부는 누가 봐도 지속 가능성이 없다”며 “시키는 것에 별 말 안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아 억지로 유지되는 조직”이라고 자평했다. D씨도 “가겠다는 사람만 넘치고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오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직원들은 ‘중·국·산·고·기’라는 용어도 심심찮게 언급하고 있다. 기피 부서로 꼽히는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기재부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과중한 업무 뿐 아니라 대통령실이나 여당 지시에 따른 맞춤형 업무가 해당 부처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부 소속 공무원들 상황은 좀 더 심각하다. 부처 이동보다는 퇴직 후 민간기업행을 바라는 직원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열심히 일할수록 정권 교체 시기에 감사를 받고 심할 경우 사법 당국의 수사 선상에 놓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뿌리 깊은 상황이다.

올해 초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해직된 E국장 등 전직 산업부 직원 3명의 사례가 좋은 예다. 이들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임의로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전직 산업부 관계자는 “개인 비위도 아니고 국정과제를 열심히 수행한 이들이 피해를 보는데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최근 췌장암으로 사망한 산업부 F과장 사례도 회자된다. F과장은 지난달 초 췌장암 판정을 받은 뒤 갑작스레 사망했다. F과장 역시 열심히 일만 하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다른 산업부 관계자는 “민간 기업은 체계적인 건강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공무원은 그런 혜택이 없다”며 “서기관급 이상은 야근을 밥먹듯 하는데, 몸이 상해도 조직은 챙겨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신준섭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