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내가 손수 만든 연습용 기타 ‘사과나무 상자 벙어리 기타’를 이야기했다. 사과 궤짝으로 만든 이 기타의 입소문은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평화촌 마을 안쪽에 자리한 평화교회라는 작은 예배당에 출석하는 중등부 학생회장 반 친구의 눈에도 띄었다.
친구는 전도를 목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통기타의 코드와 주법 등 온갖 만담을 늘어놨다. 교회에만 나가면 무늬만 기타가 아닌 진짜 통기타를 칠 수 있다는 그럴듯한 꼬임으로 미끼를 던졌다.
최고의 인기 상표 기타가 자기네 교회엔 항상 비치돼 있다고 유인했던 그때 그 순간이 기억난다. 학생회장 친구의 얼굴이 선명하다.
게다가 부활절엔 쌍달걀을, 어린이 주일엔 장난감을, 성탄절엔 특별한 선물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가을 추수감사절엔 맛난 먹거리인 크로켓과 비스킷과 과일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설명까지 상세하게 해줬다.
그는 맛깔스러운 떡밥을 끼워서 너그럽게 풀어 놓았던 낚싯줄을 부드럽게 당기기 시작했다. 크로켓을 유달리 좋아했던 나는 진짜로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같은 반 친구였던 학생회장을 따라 교회로 가게 됐다.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끝내고 크로켓을 배식으로 받아서 입에 한가득 물면, 그 고소하고 기름지고 풍부했던 맛은 ‘천국의 먹방’을 경험한 듯 행복에 풍덩 빠지게 했다. 지금까지 그 시간을 상상만 해도 나의 침샘은 한껏 자극을 받는다.
기타 고수라는 학생회장의 말만 듣고 교회라는 문턱을 넘은 후 기분 좋은 경쟁심으로 그와 가끔 대결을 펼쳤지만, 결과는 늘 나의 압승이었다. 그 친구는 중등부 회장이었기에 탁월한 사회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실제 연주보다는 액션과 입담으로만 기타를 잘 치는 친구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성숙한 기타 연주를 선보였던 나는 학생 예배시간에 복음성가를 반주하는 ‘교회 오빠’로의 첫 단추를 자연스럽게 끼웠다. 야외 예배나 수련회에서도 반주자의 몫을 잘 완수하는 일꾼이 됐다.
그런데 완전 산골짜기였던 전북 무주 구천동에서 형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상경한 친구가 맞수로 등장했다. 공장에 딸린 작은 방에서 형과 함께 척박한 생활을 했고 학교에도 못 다니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클래식 기타를 소유한 몇 안 되는 시골 친구라 늘 기타 연습이 가능했다.
교회에 가지 않는 날에 나는 이 친구의 클래식 기타를 빌려와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 시간의 총량이 오늘날의 ‘뮤지션 조병석’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3 시절 짝꿍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잔소리를 하다가 우연히 배우게 된 기타였지만, 통기타 선율의 매력은 잘 익은 과일의 향미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쉽게 열어주고 무장해제 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연’ 위에 ‘운명’을 살며시 녹여 내시는 주님의 섭리를 오늘도 수줍은 기타 연주로 찬양한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