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만 19~34세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245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이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자살실태조사에서 19~29세가 같은 답을 한 비율(18.2%)의 배가 넘는다. 국가 보호를 떠나 갑자기 홀로서기에 나선 이들은 이처럼 우울감·대인관계·경제적 문제에 시달린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주변의 도움 아래 목표 의식을 갖고 사회에 자리를 잡은 자립준비청년도 적지 않다. 서울교통공사 6년차 직원인 송희석(24) 주임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를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부르지만 내내 시설에서 생활하다 갑자기 사회에 나와 어떻게 자립할 수 있겠느냐”며 “가장 중요한 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살이던 2002년 9월 서울 마포 삼동소년촌(삼동보이스타운)에 입소했다. 송씨는 “어떻게 시설 생활을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고등학생 시절 시설에 오신 생활지도원(사회복지사)이 다른 시설에서 3살이던 나를 키운 적이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갓난아이 티를 벗자마자 시설을 전전한 탓에 학원에 다니려면 장학금을 타거나 시설 예산을 받아야만 했다. 피시방이나 노래방은 언감생심이었다. 놀이공원이나 극장을 가는 것도 기업 후원 등이 필요해 ‘행사’라고 불렀다.
목표가 없다 보니 살 이유를 알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보육원에서 학원을 보내줄 정도로 공부도 곧잘 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회의감을 느껴 그만뒀다. 우울감에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던 적도 많았다. 그 때였다. 특성화고에 진학했던 3년 터울의 선배가 공무원이 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송씨는 “많은 선배가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며 제대로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며 “그런데 특성화고 진학 후 공무원이 됐다는 선배의 소식을 듣게됐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어 “졸업 후 그 선배를 서너번 본 적이 있는데 ‘형 덕분에 잘 될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덧붙였다.
송씨도 선배의 길을 따라 걸었다. 2015년 신진과학기술고 자동차과에 진학했다. 서울교통공사는 특성화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기능인재 전형을 둔다. 고교 학과 석차비율 상위 30%가 대상이다. 이 때문에 송씨는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내신에 ‘올인’했고 3학년 때는 공무원시험 학원에 다니면서 취업을 준비했다.
그의 사회 진출 과정은 끊임없는 도움의 연속이었다. 시설 내 자립전담요원에게 안내받은 삼성꿈장학재단의 장학프로그램을 통해 학원비 200만원을 지원받았다. 송씨는 “학원의 한 이사님이 사정을 알고 한 과목 수강료로 세 과목을 들을 수 있게 해줬다”며 “그 이사님은 지금도 보육원 후배들을 개인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자립준비청년 가운데 서울시교육청과 코레일 등에 들어간 후배들도 생겨났다. 송씨도 2018년 3월 졸업과 동시에 서울교통공사에 차량직으로 입사했다.
웬만한 가정의 자녀도 서울 정착이 어려운 시대에 그는 정부·기관의 도움으로 주거도 마련했다. 자립정착금 500만원(2023년 현재 서울시 기준 1500만원)과 정부 지원금 등이 담긴 디딤씨앗통장 1200만원까지 총 1700만원을 들고 시작했다. 서울시가 시설별로 배정 해준 보증금 200만원·월세 10만원짜리 거주시설에 머물다 2019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소년소녀가장 전세 지원을 받아 원룸으로 이사했다.
LH는 보증금을 지원해주고, 이에 대한 이자 연 1~2%를 받는다. 송씨는 “보증금이 9000만원 수준인데 만 23세까지는 이자의 1%(약 7만5000원)를 냈고, 만 24세가 지난 지금은 2%인 15만원 정도를 낸다”며 “시설을 나왔을 때만 해도 통장 만드는 법조차 몰랐다. 회사 선배들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송씨는 후배들에게 지원을 받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원을 아무리 늘려봐야 자립준비청년이 신청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며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 사람, 제도의 도움을 받은 감사한 결과였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매년 강화하고 있다. 자립정착금 인상 등 경제적 자립을 위한 1단계 지원에 이어 올해부터 심리·정서적 지원을 위한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만 15~24세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자립 캠프, 동아리·자조모임 지원이 운영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임대주택 맞춤형 주거공간지원 등 거주비 부담도 완화하고, 하반기엔 3단계 지원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원제도는 많지만 제도 존재 자체를 모르는 자립준비청년도 상당수다. 그는 “(여건이 좋은) 수도권 시설에 거주했는데도 지원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며 “심지어 위탁가정 출신은 본인이 자립준비청년에 해당한다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평생 도움만 받았던 그도 이젠 도움을 주는 행렬에 동참했다. 현재 시설 후배 3명을 개인적으로 CDA통장(디딤씨앗통장)을 통해 후원하고 있다. 후원자가 자립준비청년 자산 형성을 지원하면 정부가 최대 10만원 한도 내에서 후원자 지원액의 2배를 매칭해주는 사업이다. 송씨는 “과거 내 통장 후원자를 봤더니 시설 영양사님, 원장님 성함 등이 적혀있었다”며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항상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제 이름인 ‘희석’의 뜻이 다른 물질을 묽게 만드는 것이지 않나. 자립준비청년과 일반 청년의 벽을 희석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며 “선한 영향력이 계속 이어져서 선순환 구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