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포기 동물인수제… 지자체 혼란만 키웠다

입력 2023-06-06 04:06
서울펫쇼를 찾은 시민들이 반려견과 즐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도입된 ‘사육포기 동물인수제’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물인수제는 반려인이 불가피한 사유로 사육을 포기한 반려동물을 지방자치단체가 인수해 관리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유기동물 발생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지자체는 정부의 명확한 지침이 없고, 인력도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수제 시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인수제가 반려인의 책임감을 낮추고, 동물 유기를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동물인수제 시행 근거를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4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심사를 통해 동물을 인수하고, 센터에서 보호하면서 입양 등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반려인이 동물인수를 신청하려면 일정 조건을 갖춰야 한다. 6개월 이상 장기입원 환자나 군 입대를 앞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태풍·수해·지진 등으로 인한 주택 파손을 당했거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보호시설에 입소하는 사람도 신청 대상이다.

2017년 이후 유기·유실 동물 숫자는 매년 10만 마리를 웃돌고 있다. 유기동물 관리를 위한 동물보호센터 운영비는 매년 수백억원에 달한다. 이에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 도입한 동물인수제를 도입하게 됐다.


다만 새로운 업무를 떠맡게 된 지자체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농식품부가 인수 대상자를 심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만 공지했을 뿐, 구체적인 시행 지침이나 지원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인수제 신청자에게 보호 비용 일부를 청구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금액 설정은 지자체에 맡겼다. 인수제 시행 한 달이 지났지만 서울시 등은 아직 관련 비용조차 책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자체는 인력 부족과 열악한 보호 환경 탓을 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수제를 시행하려면 현장 방문이나 출장이 필수인데, 직원 부족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동물센터는 대부분 포화상태인데 보호 공간을 증설할 공간이나 예산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인수제가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국가가 합법적인 사육 포기를 인정할 경우 돈만 내고 반려동물을 지자체에 맡기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정부는 인수제 도입에 그칠 게 아니라 동물복지 시스템 전반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