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 들어서면 ‘다마스쿠스 게이트’ 그림이 학생들을 반긴다. 대한항공 국적기 동체 색깔을 떠올리는 하늘색을 바탕으로 웅장한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벽이 표현돼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떠나며 통과한 다메섹 문의 그 날처럼 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실재했던 1970년대 모습이다.
이밖에 추상으로 표현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문화가 혼종된 스페인 톨레도 풍경에 이어 이집트 투탕카멘 시대의 나일강 청둥오리 사냥 모습까지. 지중해 연안 각국에서 발품 팔아 모아 온 작품들이 걸려 있다.
지난 1일 경기도 부천 서울신학대 100주년기념관 7층의 유재덕(60) 기독교교육과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최근 615쪽짜리 통합본 ‘성경시대 사람들의 일상은 어땠을까’(브니엘)를 펴낸 유 교수는 자타공인 열정의 저술가다. 1996년 ‘성경 밖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호산문화)를 시작으로 공저를 포함해 지금까지 단행본은 53권, 1992년 케니스 갠글의 ‘기독교교육사’(CLC)를 시작으로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브니엘)를 포함해 번역서는 57권을 출간했다. 110권 책을 저술한 글쓰기에 관해 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씁니다. 다른 분들이 일기를 쓰듯이, 저는 매일 책을 씁니다. 글 쓰고 번역하는 것이 제 소명입니다. 기독교 교양 콘텐츠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 신앙교육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세계적 맥락에서 사고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기독교 고전 번역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유 교수 글의 특징은 현장성이다. 성경을 단순히 이스라엘 특정지역의 문화로만 바라보지 않고 지중해 문명의 다채로운 모습 안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려 노력한다. 이를 위해 유 교수는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스페인 등 지중해 전역을 답사하며 성경 이야기를 풀어간다.
초대교회 박해의 출발점으로 인식된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 황제는 수금을 켜며 기뻐했을까 챕터를 집필하면서 유 교수는 바닷가와 멀지 않은 로마 언덕 특유의 강풍을 현장에서 느끼게 된다. 대선단을 정박한 항구와 지척이었던 로마의 지형이 강풍 때 대화재가 유독 잦았던 이유임을 깨닫게 된다. 유 교수는 “현장을 다녀와야만 글을 쓸 수 있었다”면서 “책의 인세는 다시 다음 책을 위한 필드 스터디 경비로 재투자해 왔다”고 말했다.
기독교 교육학자로서 유 교수의 최근 관심 분야는 뇌과학이다. ‘뇌기반 학습모형과 기독교교육’ 논문을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 ‘신학과 사회’에 게재하는 등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유 교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비롭고 오묘한 신체 가운데 결정체가 바로 뇌”라며 “뇌와 관련한 인류의 지식이 아직 10분의 1 수준이어서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뇌과학 신경과학 최신 발견을 신앙 및 기독교 교육에 접목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기독 저술가로 30년 활동해온 유 교수에게 남은 프로젝트를 물었다. 그는 “기독교 역사와 세계사 그리고 성경의 역사란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로마 시대부터 최근까지를 담은 교양서를 5권 시리즈로 출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유 교수의 대표작
커피 마시며 산책하듯… 여유롭게 기독교 역사 돌아보자
커피 마시며 산책하듯… 여유롭게 기독교 역사 돌아보자
유재덕 서울신학대 기독교교육과 교수는 현장성과 더불어 성경을 더욱 쉽고 재밌게 소개한다는 집필 원칙을 두고 있다. 유 교수는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한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탁월한 오락으로 정의하기도 했다”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산책하듯이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브니엘)는 이런 노력의 소산이다. 교육개혁을 불러온 종교개혁 이야기,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던 교회들, 중세의 에이즈였던 흑사병 등등을 다룬다. 독자를 계몽하고야 말겠다는 역사가의 본분에 매몰되기보다는 힘을 조금 빼고 재미 역시 추구하며 일상의 소소함까지 다뤄야 한다고 유 교수는 말한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브니엘)와 함께 읽어도 좋다.
‘맛있는 성경이야기’(강같은평화)는 성경의 음식 이야기 고증을 넘어 실제 만들어 볼 수 있는 레시피까지 포함한 책이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대접했던 빵과 유사한 피타 빵과 이를 응용한 양고기 케밥을 설명한다. 야곱이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 장자의 권한을 가로챌 때 건넨 것은 우리식 개역개정 번역의 팥죽이 아니라 렌즈콩을 이용한 붉은 죽일 것이란 연구까지 소개한다.
유 교수의 번역물 가운데 베스트셀러는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브니엘)이다. 시대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10년을 주기로 새롭게 번역해서 펴내 오고 있다. 유 교수는 이외에도 찰스 스펄전, 조지 뮬러, 앤드류 머레이 등 영적 거장들의 고전을 번역해 왔다.
부천=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