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5 병원’ 중 한 곳인 상급종합병원에서 일부 교수의 개인 연구 보좌 목적으로 채용된 ‘연구원’이 간호사 역할은 물론 의사의 처방 업무까지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원 중에는 아예 간호사 면허조차 없는 이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의료행위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4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종합병원 일부 과에서 교수 연구 지원을 위해 채용된 연구원들이 병동을 오가며 간호사 역할을 맡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연구원은 의사 아이디로 병원 내부망에 접속해 대리 처방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행 의료법상 진단서 작성 및 처방은 의사만이 할 수 있다. 간호사 면허를 가진 간호사가 대리 처방을 하는 행위 역시 불법 의료행위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채용 과정에서 간호사 면허가 필수 지원 자격이 아닌 과들도 있다 보니 간호사 면허가 없는 연구원들도 이 같은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인터넷에 올라온 이 병원 일부 과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확인한 결과 ‘간호사가 아니어도 지원 가능’ 또는 ‘지원자 전공 제한 없음’이라고 돼 있었다. 또 다른 과의 채용공고 역시 ‘간호사 면허증 소지자 우대’라고만 돼 있을 뿐, 간호사 면허를 필수 자격 요건으로 두고 있지는 않았다. 채용 공고에 명시된 업무 내용 역시 ‘데이터 관리 및 정리를 포함해 교수의 연구 전반 지원’ ‘국책 과제 서포트’라는 식으로만 올라 있었다.
그러나 채용 후 병원 현장에서 연구원에게 맡겨지는 일은 공고에서 밝힌 업무 범위와는 차이가 있었다. A과 교수의 경우 연구원에게 환자 차트를 보여주면서 진단서를 대신 기록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항생제 등의 처방을 대신 맡기기도 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전산 시스템상 처방 등의 업무는 의사인 교수의 아이디로만 수행할 수 있는데, 대리 처방 지시를 위해 해당 교수는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연구원에게 공유하기도 했다.
전문가와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런 행위가 사실상 일반인의 의료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약 복용량을 잘못 입력하는 등의 연구원 처방 실수가 일어난 적도 있다고 한다. 병원 내부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간호사 면허가 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부 연구원은 (간호가 아닌) 이공계 다른 분야를 전공한 이들”이라며 “의료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의료행위를 한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병원은 “교수가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연구원이라 아직 확인 중”이라며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확인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법에 규정된 업무 범위를 넘어선 의료행위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간호협회는 지난달 24일 ‘간호법 관련 준법투쟁 1차 진행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온라인 불법진료신고센터 개설 닷새 만에 모두 1만2189건의 의료현장 불법행위가 신고됐다고 밝힌 바 있다. 신고된 불법 진료 행위로는 채혈이나 조직 채취 같은 검사 행위가 6900건, 진단서나 수술 기록 등을 썼다는 처방 및 기록이 6800건에 달했다. 불법 진료행위를 지시한 주체별로는 담당 교수와 전공의가 각각 44%, 24%를 차지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