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관위의 뒤늦은 개혁안, 여론 무마용은 안 된다

입력 2023-06-01 04:02 수정 2023-06-01 04:02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특별감사 결과와 후속대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1일 자녀 채용 의혹에 연루된 간부 4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결정했다. 외부기관과 합동으로 전현직 직원의 친족 관계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도 벌이기로 했다. 또한 경력 채용제도 폐지나 대폭 축소, 보안점검 시행 방침도 밝혔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뒤늦게 나온 조치다.

선관위는 이번 자녀 채용 의혹을 대대적인 쇄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잠시 소나기나 피해 보자는 식의 자세로는 추락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 기관의 견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이날 선관위 사무총장직 외부 개방, 외부 인사를 중심으로 하는 감사위원회 도입, 국회 국정조사 수용 등의 방침을 밝혔다.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조치다. 선관위는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불거진 ‘소쿠리 투표’에 대한 감사원의 선거업무 자료 요청을 거부했다. ‘헌법상 독립기구로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댔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조직으로부터 해킹 공격을 받고서도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을 거부했다. 역시 헌법기관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침해 가능성 등이 이유였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름의 무게에 맞는 공정함과 엄격함을 지켰어야 했다. 하지만 자녀 채용 의혹 사태로 선관위가 자정 기능이 없음이 드러났다. 생색내기용 외부 감사로는 쇄신이 어려울 것이다.

선관위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지난 25일 사퇴했지만, 이들은 자녀 채용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노 선관위원장은 여권의 사퇴 요구와 관련해 “사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원장이 여론과 정치권의 압력에 밀려 사퇴하는 것은 선관위 중립성과도 관련된 사안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선관위는 자녀 채용 의혹 이전에도 선거 현수막 문구 논란으로 정치적 편향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노 선관위원장은 “선관위에 대한 믿음은 공정과 중립에서 나온다”고 했다. 선관위는 선거 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