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부터 대기 줄… 국공립어린이집 ‘하늘의 별따기’

입력 2023-05-31 04:07 수정 2023-05-31 04:07
30일 국가철도공단이 경의중앙선 탄현역에 개소한 '키즈레일 탄현역 어린이집'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제공

경기도 시흥에서 생후 4개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A씨(37)는 이른바 ‘독박 육아’ 중이다. 남편은 직장에 다니고 있고 육아휴직을 한 A씨가 홀로 아이들 양육을 감당하고 있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4개월 된 영아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 A씨는 손목과 무릎 통증으로 정형외과를 방문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이돌봄서비스는 부모가 갑자기 출장을 가는 등 일시적인 양육 공백이 생기는 경우 탄력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집으로 찾아가 임시보육, 식사 챙겨주기, 하원 동행 등 돌봄을 제공한다. 시설 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한다는 취지다.

시간당 1만원대 비용으로 종일제(생후 3개월~만 36개월) 혹은 시간제(생후 3개월~만 12세) 등 돌봄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서비스 시작시간 기준 닷새 전부터 신청할 수 있지만, A씨는 “돌봄 선생님이 부족해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한 달을 기다려 이달 초 다시 연락했지만, 여전히 대기자가 100명이 넘었다. A씨는 “구해지지도 않는 서비스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출산 정책을 짜낼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제도부터 제대로 운영되도록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2배 이상의 요금을 내고 사설업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30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아이돌보미 인력은 전국적으로 2만6675명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대기자가 많고 서비스를 제때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아이돌보미가 거주 지역 등을 고려해 돌봄 가정을 선택하는 방식이어서 교통이 불편하거나, 다자녀 가정의 경우 서비스를 받기 더욱 어렵다. 교통 불편 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러 가더라도, 교통비가 1회 1만원에 그치기 때문에 먼 지역은 꺼리는 것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어떤 지역은 돌보미가 신청하면 바로 오고 어떤 곳은 대기가 매우 긴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지역별 대기 현황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장애 아동을 키우는 경우에는 돌봄 서비스를 받기 더 어렵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미혼모 B씨(40)는 4세와 6세 발달 장애 아동 2명을 홀로 키우고 있다. B씨 역시 지난해 돌봄서비스를 신청했지만, 현재까지도 기약이 없는 상태다. B씨는 “집 문을 나서면 바로 차도라 한시도 아이들에게 눈을 뗄 수 없다”며 “혼자서 잠시 바깥에 나가는 날에는 아이들이 다칠까 봐 불안에 떨며 지낸다”고 토로했다.

영아도 믿고 맡길 수 있어야

전문가들은 결국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기관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영아일수록 기관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어린이집은 운영 주체에 따라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 어린이집, 법인·직장·가정 어린이집 등으로 나뉜다. 직장 어린이집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모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한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보육 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대기 인원이 많아 입소하려면 출산 전에 대기를 걸어놔야 할 정도로 ‘하늘의 별따기’다. 정부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보육 품질을 평가해 인증하는 공공형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공공형 어린이집은 지자체가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보육교직원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 시설이다. 보육료 부담이 적으면서도 보육 서비스 질을 높여 부모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을 늘린다는 취지다.

지정·재지정 평가도 까다롭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육진흥원의 공공형 어린이집 매뉴얼을 보면 시설 운영 외에도 연장반 전담교사의 배치 규모나 야간 연장·휴일·장애아 보육 서비스를 운영하는지 여부에 따라 배점이 달라진다. 영·유아 급식이나 간식의 경우에도 재료비를 기준 이상으로 지출하는 경우 가점을 받을 수 있다. 학부모들이 보육 서비스에서 선호하는 요소들이다.


지난달 말 기준 전국의 공공형 어린이집은 2152곳이 운영 중이다. 나성웅 한국보육진흥원장은 “공공형 어린이집은 우수한 민간보육 인프라”라며 “지속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공공성 강화와 품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시설이 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지난 2월 복지부 조사 결과 어린이집에 대한 만족도는 직장어린이집이 평균 4.35점으로 가장 높았다. 다만 지난해 기준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대상 사업장(상시 여성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은 1602곳에 불과했고, 이 중 설치 의무를 이행한 사업장은 1466곳(91.5%)으로 조사됐다.

모든 사업장이 어린이집을 둘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접근이 편리한 공적 보육 시설이 대안으로 꼽힌다. 국가철도공단은 지난 4일 경의중앙선 행신역에 ‘키즈레일 행신역 어린이집’을 열었다. 공단 자녀가 아니어도 누구나 입소할 수 있는 곳이다. 행신역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부모들이 자녀를 편하게 맡기고 데려갈 수 있어 보육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다. 탄현역에 이어 두 번째 역사에 설치된 어린이집이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육기관의 질적 편차를 줄이려면 공공성이 높아져야 한다”며 “부모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지역사회와 연계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