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층간소음 안내문에
마음 무거워… 사실 주민이
아니라 건설사 문제 아닌가
마음 무거워… 사실 주민이
아니라 건설사 문제 아닌가
광고가 시작되면 어린이놀이터가 보인다. 카메라가 약간 거리를 두고 롱 쇼트로 찍은 어린이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논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목소리, 웃음소리, ‘아악’ 하는 외침 등이 그대로 녹음돼 있다. 시끌시끌하다. 20초가 지나도록 아무런 광고 카피도 뜨지 않는다. 그러다 한 줄 카피. ‘아이들은 조용히 클 수 없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놀이터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 ASMR 기법으로 촬영한 광고는 ‘내일을 키워가는 집’이라는 짤막한 카피와 아파트 브랜드로 끝난다. 유튜브에서는 이 광고 뒤로 이어지는 캠페인 영상을 볼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놀이터를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놀이터로 지었다는 것. 더 높게, 더 길게, 더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도록 도전과 위험을 즐기며 마음껏 뛰노는 시끌벅적한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내일을 키워가는 집이라는 메시지다.
‘스위스처럼 맑고 깨끗한 환경과 유럽풍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한 아파트 브랜드 ‘스위첸’이 2022년에 집행한 광고다. 2005년 첫 브랜드 론칭 후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만화 캐릭터나 스위스 원산의 견종인 세인트 버나드 등을 등장시켜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데 몰두했던 이 브랜드는 이후 매우 일상적이고 또 매우 인상적인 광고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아파트 브랜드들이 고품격과 미래형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할 때 이 브랜드는 유독 사람들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자식농사’ 끝내고 자식의 자식 농사를 짓는 나이든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 뭉클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문명의 충돌’이라 할 만큼 서로 다른 생활습관을 가져 아웅다웅 다투지만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몸처럼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당 아파트 거주 어린이만 이용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힌 입주민 전용 놀이터에 초점을 맞추거나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애완견 성대수술을 해주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을 클로즈업한 광고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런 광고들은 내로라하는 대기업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아파트 건설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후발 주자의 차별화 전략일 것이다. 그 차별화 전략을 수년간 일관적으로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이 브랜드 광고가 매번 호평받는 이유일 것이다. 광고와 브랜드의 실체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광고가 브랜드의 차별적 가치를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종종 관리사무소의 새 안내문이 붙는다. 대개 층간소음에 관한 것이다. 오래돼 드르륵드르륵 소리 나는 베란다 새시 미닫이문은 아주 천천히 여닫아라, 싱크대 거름망의 음식 찌꺼기를 버릴 때 두드리는 쿵쿵 소리로 수면 방해를 받고 있으니 밤에는 손으로 집어서 봉지에 버려라, 이른 새벽 휴대폰 알람소리와 진동소리가 아래위층에 전달되니 휴대폰을 수건 등에 감싸서 사용해라 등등.
관리사무소에서 나름 간곡히 부탁하는 어조로 안내문을 붙이긴 하지만 이처럼 온갖 생활소음에 일일이 토를 붙이는 안내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한밤중에 이런저런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며 민원을 넣는 이들을 생각하면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앞으로 관리사무소에서 어디까지 언급하게 될까 내심 궁금해진다. 층간소음은 주민들이 서로 조심해야 할 일이지만 사실 이건 주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순수 국내 기술로 누리호를 쏘아 올리는 이 시대에 사소한 생활소음 하나 막지 못해 ‘발망치’라는 말이 일상이 돼버린 사회. 아이들은 조용히 클 수 없고, 사람들은 늘 조용히 살 수만은 없다. 잘 만든 어린이놀이터 광고 아래, 아이들 소리 때문에 1년 내내 창문을 열지 못하고 산다는 어느 1층 세대의 불평 댓글이 달린 걸 보면서 건설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