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레트로를 찾아 나서는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열풍이 거세지면서 오래된 식품 브랜드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안정적이던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뛰거나, 인기가 없어 단종됐던 제품이 다시 시장에 나와 빛을 보고 있다.
오리온은 올해 1~4월 ‘땅콩강정’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9% 뛰었다고 25일 밝혔다. 땅콩강정은 한국의 전통 간식인 강정을 스낵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전통 음료 식혜를 본뜬 제품을 찾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팔도의 ‘비락식혜’는 같은 기간 2530만개가 팔려나가면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1900만개) 대비 32.1% 늘었다.
전통 간식 형태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판매돼 온 ‘장수 과자’도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출시한 지 30년이 된 롯데웰푸드의 ‘엄마손파이’는 지난 1~4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올랐다. 1979년에 출시된 ‘빠다코코낫’과 1987년에 출시된 ‘마가렛트’의 매출도 같은 기간 각각 20%씩 늘었다.
단종된 과자가 소비자들의 요청으로 재출시되기도 했다. 롯데웰푸드는 8년 전 단종됐던 ‘립파이’를 ‘립파이 초코’로 재개발해 이번 달 다시 시장에 내놨다. 롯데웰푸드 홈페이지를 통해 ‘어릴 때 많이 먹었는데 단종돼 슬프다’는 등 립파이를 재출시해달라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접수되자 발전시켜 선보인 것이다. SPC삼립의 포켓몬빵, 오리온의 와클도 추억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의 요구로 재출시된 대표적인 사례다.
레트로 열풍은 오래된 식재료 브랜드까지 재조명했다. 장수 식재료 브랜드가 협업을 통해 전혀 다른 카테고리의 식품을 내놓은 것이다. 대한제분의 곰표밀가루는 ‘곰표밀맥주’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두고 ‘곰표 오징어 튀김’ ‘곰표 팝콘’ ‘안녕! 곰표 치킨너겟’ 등 후속작을 연이어 선보였다. 대상의 미원은 ‘미원맛소금팝콘’을 내놨고 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오래된 브랜드들이 할매니얼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은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취향을 반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덕분이다. 땅콩강정은 고급화된 소비자 입맛에 맞춰 지난 2021년 땅콩 함량을 24.4%에서 30%로 늘렸다. 비락식혜도 같은 해 전통 식혜의 자연스러운 맛을 살리기 위해 인공 감미료를 줄였으며 이전에도 수차례 레시피 수정을 거듭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수십년된 식품 브랜드의 매출이 판촉 없이 눈에 띄게 느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레트로 열풍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