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내려 잡았다. 반도체 업황 부진 등에 따른 경기 악화가 심화됐다는 판단에서다. 한은은 장기화 우려가 있는 경기둔화 국면을 고려해 이날 세 차례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통위원 7명의 전원일치 결정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최종 금리 수준과 관련해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모두 최종 금리를 3.75%로 가져갈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를 기정사실화한 시장 관측에 대해 “물가가 확실하게 2% 목표 수준으로 수렴한다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 인하시기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앞으로도 긴축 기조를 상당 기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계절 변동 요인 등을 제외한) 근원물가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기 때문에 이 속도를 좀 더 점검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 정책 등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의 세 차례 잇따른 동결 카드 배경에는 경기침체 우려가 있다. 무역수지가 14개월째 적자를 기록 중인 데다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는 아직 예상치를 밑돌고 있다. 올 1분기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3%에 그치며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을 피했다. 누적된 가계·기업 부채와 저축은행 등의 부실 리스크에다 미국의 연이은 은행 붕괴 사태로 인한 글로벌 금융 불안 불씨도 여전한 상태다.
이 총재는 연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호주 은행도 (기준금리를) 다 안 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달에 올렸다”며 “한국은 왜 그렇게 못할 것 같으냐. 절대로 (추가 인상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는 게 제 부탁”이라고 말했다. 또 “(저성장 문제를) 재정·통화 정책 등 단기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도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함으로써 한·미 기준금리 차는 역대 최대 폭인 1.75% 포인트가 유지됐다. 이 총재는 한·미 기준금리 차로 인한 국내 자본 유출 우려와 관련해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한·미) 금리 격차라는 프레임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