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한류 타고 번지는 한국發 이단

입력 2023-05-27 03:06
몽골에서 현지 언어로 번역돼 퍼지고 있는 한국발 이단들의 교리 서적. 일본인 다카시 몽골 선교사는 지난 20년간 모아둔 이 서적들을 지난달 몽골바이블백신센터에 기증했다. 몽골바이블백신센터 제공

지난해 튀르키예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일정 중 잠시 짬을 내 일행과 인근 유적지를 관광했다. 한창 둘러보고 있는 일행에게 중학생쯤 된 딸과 아들의 손을 잡은 한 현지인 아버지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자녀들이 만나보고 싶어해 찾아왔다고 했다. 현지에 퍼진 한국 문화 열풍(한류·K컬처)으로 현지 아이들에게 한국인은 신기한 관심의 대상이었나 보다. 일행이었던 목사님은 아이들과 사진을 찍은 후 기특했는지 한국 돈을 용돈으로 쥐여줬다.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과거 이 말이 낯선 땅에서 겪는 향수병에 관한 말이었다면 요즘 해외에 나가본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한류’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과거 해외에서 으레 아시아인은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으로 봤다고 하나 요즘엔 앞선 사례처럼 한국인 아니냐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현지인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몽골을 찾았을 때도 거리를 지날 때면 한 블록마다 마주치는 한국 브랜드 편의점 간판에 놀란 기억이 있다. 가수 BTS와 블랙핑크의 노래를 듣고 한국 브랜드 이름의 편의점에서 한국 라면을 먹으며 또래 친구들과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몽골 아이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마주하고 나니 자연스레 왠지 모를 조국을 향한 뿌듯함과 자부심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 자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몽골에서 만난 한 현지인 사역자가 한 뭉텅이의 책자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책들 사이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로 규정한 교주들이었다. 책은 몽골어로 번역된 한국발 이단·사이비 종교단체들의 교리서였다. 현지에서 만난 사역자들은 한목소리로 한류를 악용해 현지 교회와 사회를 파고드는 한국발 이단·사이비, 이른바 ‘K컬트(cult)’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는 지난해 해외 포교 현황을 발표하며 몽골의 경우 3151명의 신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라 전체 인구가 350만명에 불과하고 기독교 인구가 3%도 채 못 미치는 몽골에서 실로 큰 숫자였다.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도 226명이 신도로 등록했다고 하니 결코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이 같은 한국발 이단들은 한류를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긍정적인 현지인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한글을 알려주겠다거나 교리 교육을 잘 받으면 한국으로 여행을 보내준다는 식으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 교계에 따르면 몽골 정부가 나서 한국발 이단들의 활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단의 위험성을 알리는 TV 방송 등도 방영됐다고 한다.

이단·사이비를 일컫는 영어 컬트는 ‘경작하다’ ‘숭배하다’는 의미가 있다. 문화나 교양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cultus(쿨투스)’를 어원으로 하고 제사를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컬트’를 “급격한 근대화에 기존 종교나 사회 이념이 더는 한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지 못할 때, 새로운 정신적 구심점을 찾기 위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K컬처를 악용해 K컬트들이 자신들의 이단 교리를 퍼뜨리는 현실이라니 참으로 공교롭다.

바이블백신센터(센터장 양형주 목사)가 지난달 몽골의 몽골연합신학교에서 진행한 세미나에 참석한 현지인 목회자들은 지방 곳곳에까지 침투하는 한국발 이단에 의해 미혹되는 교인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어 피해가 크다는 현실을 전했다. 정통 개신 교리와 이단 교리의 차이점을 배워 좋았다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한국교회의 필요한 역할을 봤다.

내 교회, 내 교인만 안 뺏기면 그만이 아니다. 안일한 대처는 곧 세계 곳곳에서 열심히 사역 중인 한국인 선교사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류로 애써 쌓아 올린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가, 그리고 온전한 예수의 복음이 한국발 이단들로 인해 훼손되기 전에 내 일이라 생각하고 나서야 할 때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