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수확 풍경에는 항상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밭에서 다 자란 마늘을 캐내려면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손품을 들이는 방법밖에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23일 방문한 경남 합천 용주면의 한 마늘밭은 인부들 대신 낯선 농기계들로 채워져 있었다. 24ℓ 용량인 대형 방제용 드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고랑을 조금씩 옮겨가며 물을 주는 일종의 로봇이 구동을 시작했다. 사람 손으로 하던 작업들을 생경한 기계가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려 모여 든 농민들의 이목이 쏠렸다.
압권은 이후 시범을 보인 두 가지 형태의 농기계였다. 다 자란 마늘 줄기를 쓱싹쓱싹 잘라내는 트랙터형 농기계가 구동을 시작했다. 농기계가 지나가자 무성하게 자란 마늘 줄기는 깔끔하게 잘라져 뽑기 알맞은 수준의 밑둥만 남겼다. ‘마늘 줄기 절단기’로 명명된 이 농기계는 1시간에 991㎡ 면적만큼 작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후에는 ‘마늘 수집기’란 이름의 다른 농기계가 나섰다. 밑둥만 남은 마늘을 흙에서 뽑아 낸 뒤 흙 등 이물질을 털어내고 뒷부분에 부착된 수집망으로 옮기는 작업이 단 한 번에 척척 진행됐다. 마늘 줄기 절단기보다는 작업 시간이 느리기는 하지만 과거 수작업 방식보다는 더 빨라 보였다. 농기계 시연회 현장에서 만난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이 기계들을 다 (마늘밭에) 적용한다고 했을 때 필요한 일손은 기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진다”며 “인건비 등 농업비용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진청과 농기계 제조업체가 협업해 만든 농기계들이 밭작물 농사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 기계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일본 밭작물 농사 현장과 달리 한국 밭작물 농사 현장은 기계화가 더딘 편이다. 24일 농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밭작물 기계화율은 63.3%에 불과하다. 세분화해 보면 파종(12.2%)이나 수확(31.6%)처럼 핵심 작업의 기계화율은 더욱 떨어진다. 사실상 수작업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 시연한 농기계들이 현장에 투입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6년까지 목표로 잡은 밭작물 기계화율 77.5% 달성도 가능할 수 있다.
비단 마늘 뿐 만 아니다. 해당 농기계들은 일정 부분 조정 작업을 거쳐 양파나 감자, 고구마 등 다른 작물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농진청은 마늘을 비롯해 특히 손이 많이 가는 8대 밭작물을 대상으로 2027년까지 기계화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 동안 국내 밭작물 농사의 기계화가 더뎠던 것은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기계로 밭작물을 채취하면 자칫 생채기가 나 상품 가치가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 농민들이 도입을 꺼려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농촌에서는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한껏 뛰어오른 인건비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조 청장은 “결국은 기계화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어떻게 널리 보급할 수 있느냐다. 해당 농기계 가격은 적게는 수백 만원에서 많게는 대 당 1억원까지도 나간다. 소규모 농가들 입장에서는 일일이 구비하기가 쉽지 않은 가격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지역 농협 등을 통해 보급하고 농민들은 대여해 쓰는 식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합천=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