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속으로 기어들어 가야만 자랄 수 있는 땅콩은 땅 속이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과 닮았다. 지금 우리의 삶은 예전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꽃처럼 느껴진다.”
먼 훗날의 인간들은 지하 세계에 살고 땅콩을 많이 먹는다. 풍족하고 값이 싸며 다양하게 활용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하에 사는 인류의 식사는 수십 개의 알약과 물, 약간의 탄수화물과 단백질 덩어리, 그리고 환각과 정신분열 등의 정신질환을 막는 ‘VA2X’라는 물질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대표적인 고지방, 고단백 건강식품인 땅콩은 이들에게 적절한 식재료다.
연작 소설 ‘이끼숲’에서 천선란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면서 인류의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상에서 지하로 떠밀려 새로운 세계를 만든 미래의 인간은 과거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을 받는 셈이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다음 세대를 위해 인류 문명을 지속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고, 나태함은 허락되지 않았다.
소설에서 보이는 미래는 곧 닥칠 것만 같아서 섬뜩하다. ‘이끼숲’에서 인류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숲에 있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높은 품종으로 바꿔 심었다. 하지만 한 그루의 나무가 병에 걸리자 똑같은 품종으로 이뤄진 숲이 사라져버렸다. 메말라있던 지구에 불씨를 품은 바람이 불어 전 세계에 검은 재가 휘날렸다.
한정된 자원 탓에 태어날 아이의 숫자를 통제해야 하고, 모든 부부는 출산 계획을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계획과 다르게 태어난 아이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머리에 칩을 심지 못한 이들은 위원회로부터 제거 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다니지만 지하 세계에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선란은 작가의 말을 통해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작가는 2019년 과학소설 ‘무너진 다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 ‘천 개의 파랑’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나인’, 중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 등이 있다.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