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떤 믿음으로 구원받는가

입력 2023-05-25 03:06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 여기며 살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의 원어 ‘피스티스’는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께 보여 주신 신실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신실하심, 곧 하나님의 의(칭의)를 대표하는 갈라디아서 2장 16절이나 로마서 3장 22절에서 공히 ‘디아 피스테오스 이에수 크리스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모두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렇게 번역하면 우리 구원의 근거가 우리 자신의 믿음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신실하심’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호응하신 유일한 분이셨고 그의 피스티스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신실함이요 죽기까지 사랑한 신실함이자 그 결과로 십자가를 감당하신 신실함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에베소서 2장 8~9절의 말씀이 진리가 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피스티스는 기독교적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신약 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정치 경제 사회와 개인 생활 전반에서 여러모로 사용되던 단어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피스티스가 어떤 뜻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연구한 책이 테레사 모건의 ‘로마의 신뢰와 기독교적 믿음’입니다. 피스티스 연구에 있어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모건의 책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피스티스는 현대 기독교가 사용하는 의미의 ‘믿음’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았고 신실함이나 신뢰, 충성, 신의 등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모건은 현재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믿음을 ‘진술적 믿음’이라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등의 진술에 대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거나 ‘동의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믿음입니다.

당시 피스티스는 군인이나 노예 혹은 누구라도 맡겨진 임무를 성실하게 감당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항복한 국가의 국민을 죽이지 않는 게 피스티스이고 종주국 관계에서 그 관계를 배신하지 않는 게 피스티스였습니다. 이렇게 인간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사용된 단어가 피스티스인데 어떤 진술을 내가 인정하고 동의한다는 뜻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피스티스는 기본적으로 생각이나 동의가 아니라 행동과 태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하지도 않고 실신함과 신뢰, 순종 없는 개인의 믿음을 강조하며 적당한 말로 구원을 팔아 ‘종교 놀이’ 하는 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스스로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구원파적 복음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우리에게 계시 돼야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됩니다. 믿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 된 믿음만이 구원받을 믿음이며 그 믿음을 허락하신 은혜를 잊지 않으며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고 믿음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구원은 완성돼 갑니다. 사람이 판단해주는 구원 심판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구원은 절대 사람의 선포나 사람의 믿음으로 완성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정통이나 전통(혈통), 사람의 뜻으로 될 수 없습니다.

거짓된 진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듣기 좋은 말씀을 선택해 취하지 말고 반드시 듣고 행할 말씀을 취하고 믿어 하나님만 구하고 찾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동훈 목사(익산 전하는교회)

◇전북 익산 전하는교회는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소속으로 ‘말씀으로 끊임없이 갱신하는 교회’ ‘제자가 돼 순교하는 교회’ ‘바른 진리와 신앙을 전수하는 교회’ ‘지역과 이웃을 사랑으로 품는 교회’ ‘성령과 땅끝까지 선교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