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 전 답안지 파쇄한 산업인력공단… 609명 ‘재시험’ 날벼락

입력 2023-05-24 04:02
어수봉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가운데)과 임직원들이 2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수중학교에서 시행된 ‘2023년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파쇄사고와 관련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응시한 609명의 답안지를 채점하기 전 실수로 파쇄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단은 시험이 끝나고 약 한 달이 지나서야 답안지가 사라졌다는 걸 인지하고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세무사 시험과 산업안전기사 시험 채점 논란에 이어 ‘답안지 증발’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공단의 시험 관리·감독 부실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23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에서 치러진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 답안지 609장이 공단 관계자의 실수로 채점 전에 파쇄됐다.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에 대한 주관식 답안지였다.

답안지는 시험 직후 포대에 담겨 공단 서울서부지부로 옮겨졌는데, 직원이 남은 시험지로 오인해 답안지 금고가 아닌 폐기 서류 창고에 보관했다는 것이 공단 측 설명이다.

공단은 시험 이튿날 금고에 보관된 답안지를 다른 지역 채점실로 보냈지만 이 과정에서도 창고로 들어간 연서중 시험장 답안지 누락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문제를 인지한 건 시험이 끝나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본격적인 채점을 진행하던 도중 답안지가 없는 응시자 정보가 확인됐고, 사라진 답안지를 찾는 조사가 진행되면서다. 지난 20일에야 답안지가 다른 창고에 잘못 들어가 이미 폐기됐다는 걸 파악했다.

공단은 채점 기회도 못 받은 응시자 609명에게 이날부터 피해 사실을 통보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 1~4일, 24~25일 중 재시험을 치르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개인사정으로 해당 기간에 재시험을 치를 수 없다면 예외를 적용해 가능한 날짜를 물어보고 1명을 위한 시험이라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교통비 제공, 정기 검정 수수료 면제 외에도 추가 피해보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이미 끝난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 피해 응시생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물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어수봉 공단 이사장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가 자격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공공기관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공단이 자격 검정 관리를 소홀하게 운영해 시험 응시자 여러분께 피해를 입힌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철저한 조사로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고 저를 비롯해 관련 책임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공단의 부실한 시험 관리가 도마에 오른 건 최근에만 세 차례다. 2021년 세무사 자격시험과 지난해 산업안전기사 시험에서 연이어 채점 논란이 불거졌었다. 고용노동부 감사와 공익감사까지 진행된 세무사 자격시험은 재채점을 거쳐 75명이 추가합격했다. 산업안전기사 시험은 채점자가 지나치게 정답을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오면서 불합격된 400명이 합격 처리됐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