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뒤늦게 파악… 자회사 통제못한 지주사들

입력 2023-05-24 04:03

금융당국이 KB증권과 하나증권 간 불법적 ‘채권 돌려막기 거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두 회사를 자회사로 둔 두 금융지주사의 허술한 내부통제시스템이 도마 위에 올랐다. KB증권과 하나증권의 자전 거래는 지난해 4분기에 이뤄졌다. KB금융지주의 경우 실적 결산때 해당 사실을 인지했다. 해당 사실을 몰랐던 KB금융은 지난해 말 박정림 KB증권 사장의 임기를 1년 연장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금융은 박 사장의 임기 연장이 결정된 이후에야 하나증권과의 불법 자전거래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가 파악했던 시점은 실적 결산 시점이다. KB금융이 예상했던 KB증권의 당기순이익보다 900억원이 줄어들자 뒤늦게 파악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 한 관계자는 “결산 과정에서 해당 사실을 인지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지주사는 이슈가 있을 경우 해당 이슈에 대해 검사를 진행했고 각 관계사의 검사 결과를 제출받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증권은 기업 등 법인 고객에게 단기 투자 상품을 팔며 장기 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불일치 자산 운용을 해왔다. KB증권은 이 과정에서 900억원에 이르는 평가손실을 냈다. 이를 감추기 위해 하나증권과 불법 자전 거래를 한 뒤 발생한 손실을 고유자금으로 메웠다.

이 영향에 KB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7.5%나 감소한 1948억원을 기록했다. KB증권은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으로 3091억원을 기록했다. 고유자금으로 손실을 메꾸면서 당기순이익도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KB금융과 하나금융의 자회사 감사 기능에도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다. KB증권에서 해당 업무를 직접 총괄하는 고객자산운용센터 K상무도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의 검사에 속도가 붙으면서 차기 KB금융 회장으로 거론될 정도로 굳건했던 박 사장이 곤혹스럽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외부 전문 헤드헌터 기관을 통해 차기 회장 후보군을 추천받고 있다. 현재 허인· 양종희·이동철 KB금융 부회장,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함께 박 사장이 유력한 다섯 후보로 꼽힌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서 실무진의 잘못을 CEO가 책임지는 관행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