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의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사인 박모(28)씨는 최근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 선정적 장면이 등장하는 웹툰을 보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성관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데다, 성을 희화화하는 대사도 나오는 것이었다. 박씨는 “어린아이들이 상세한 성적 묘사가 나오는 웹툰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며 “다른 반 친구들에게도 공유될 우려가 있어 학교 차원에서 쉬는 시간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도 많이 보는 웹툰에 선정적·폭력적 장면이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연령제한 장치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12세, 15세 이용가 웹툰의 경우 서두에 해당 연령 이상의 관람을 ‘권장’한다는 문구가 있지만, 연령 인증 절차는 따로 없다. 미취학 아동도 접근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 성북구에서 초등학생 2학년 아들을 키우는 정모(50)씨는 “아들이 즐겨보는 웹툰에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모습이 나와서 큰 충격을 받았다”며 “아이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정해놓고 부모가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사용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 등 웹툰 플랫폼은 웹툰자율규제위원회에서 규정한 ‘웹툰 연령등급분류 자가진단표’를 기반으로 작가와 협의해 적합한 연령 기준을 설정한다. 하지만 자가진단표는 강제성이 없는 데다, 진단 기준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정성 수준을 판단할 때 ‘가벼운 수준의 성적 내용’, ‘자극적·지속적이지 않은 성적 내용’ 따위의 기준이 제시되지만, 이는 개별 작가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될 수 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웹툰을 12세, 15세 이용가로 규정해도 더 어린 연령대가 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똑같은 장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세세하게 연령 기준을 세우면 창작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사건건 기준을 제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유해 매체로 지정되지 않는 한 웹툰을 일일이 검열할 수는 없다”며 “웹툰 자체를 청소년 유해 매체로 선정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도 연령등급이 변동되는 경우가 드물다. 지난해 웹툰자율규제위로 47개 작품, 142건의 민원이 들어갔지만, 연령등급이 변동된 작품은 6개에 그쳤다. 웹툰자율규제위와 협약을 맺지 않은 플랫폼 업체의 경우 이런 수준의 규제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만화가협회 관계자는 “위원회와의 협약은 선택”이라며 “비협약사 작품이 매우 부적절해도 위원회에서 시정 권고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골적인 성묘사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지속해서 노출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게임에서 연령등급을 세분화하듯 웹툰도 15세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의 엄격한 기준을 세워서 아이들이 연령대에 맞는 콘텐츠를 접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민주 기자 la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