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자격시험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채점도 하지 않은 609명의 답안지가 공공기관의 실수로 파쇄됐다. 재시험을 치른다지만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정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국가시험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한 중학교에서 수험자 609명이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을 치렀다. 시험이 끝난 후 답안지는 포대에 담겨 국가시험을 주관하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 서울 서부지사로 운반됐는데 인수인계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 공단 금고로 옮겨져야 할 답안지가 창고로 갔다가 결국 파쇄된 것이다. 공단은 이 사실을 본격적인 채점이 시작된 후에야 발견했다. 시험을 치른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가시험의 답안지 운송·보관 과정이 믿기지 않을 만큼 허술했다. 전국에서 이 시험을 치른 15만1797명 가운데 609명은 이 같은 사실도 모른 채 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공단 측은 이들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데 이걸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시험의 공정성과 관련해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재시험의 난이도 조절, 이미 정상적인 채점 과정에 들어간 15만여 다른 수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이런 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일어났다면 그 파장이 어땠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산업인력공단의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세무사 자격시험 채점 부실로 큰 논란을 빚었다. 감사원의 공익 감사 결과 위법·부당 사항이 확인돼 결국 세무사 시험 사상 처음으로 재채점을 해야 했다. 공단은 이번 일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문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가기술자격 시행 프로세스 전반을 점검해 개선하겠다는 약속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