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자전거래 한두 번 아니다… 수익성만 고려하는 업계 구조 탓

입력 2023-05-23 04:07
서울 여의도 금융가의 모습.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증권사들이 랩어카운트 등 상품을 팔며 증권사 간 불법 ‘자전거래’를 하는 관행은 과거에도 만연했다. 그때마다 금융 당국은 징계를 내렸지만 솜방망이 처벌과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실적 우선주의가 이어지면서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증권(현 KB증권) 임직원들은 2015년 우정사업본부 등으로부터 투자받은 기금으로 약 59조원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자전거래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자전거래란 가격을 밀어올리거나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보유한 자산을 스스로에게 사고파는 행위를 뜻한다. 당시 현대증권은 6개월 만기의 단기상품을 유치한 자금으로 만기 1~3년의 장기어음을 사들여 운용했다. 이번에 KB증권-하나증권 간에 이뤄진 ‘만기 불일치’ 자산 운용과 유사한 방식이다. 당시 현대증권 임직원은 벌금형과 1개월 일부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6년에는 미래에셋증권과 한화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3개 증권사가 불법 자전거래로 무더기 적발됐다. 미래에셋증권은 고객사가 맡긴 자산으로 2009년부터 5년 동안 2970회에 걸쳐 10조5940억원 규모의 불법 자전거래를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2009년부터 4년 넘게 4351회에 걸쳐 8조7380억원에 달하는 기업어음(CP)과 채권, 예금 등을 불법으로 운용했다. NH투자증권 역시 5조564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채권을 자전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들 기업에는 총 5억원 규모의 과태료를 물리는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불법 자전거래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증권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있다. 위법 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관례라는 미명하에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다. 2010년대 말부터 2020년대 초까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채권 가격이 오른다는 전제하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상황도 더해졌다. 당시에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은 고금리를 이유로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고 투자자는 시중금리 대비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수익성만 강조하는 증권사 내부통제 구조도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인센티브’ 공식이 강한 증권업계에서 정도만 추구하는 증권사는 바보로 통한다”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